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 서남동양학술총서 3
조동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보통 이런 책은 4층 사회과학-민속학 서가에서 곧잘 찾을 수 있는데 어째 3층 인문과학 서가에서 봐버렸습니다. 그런 책이 종종 있지요. 보석 관련 서적이 4층과 3층에 모두 분포해있다든가, 고려 시대 역사서의 한 가지인 [제왕운기]가 고전문학 서가에서 발견된다든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배치한 것이겠지만 땡기는 주제를 찾아가서 제목을 보고 책을 골라오는 취미가 있는 저로선 어처구니 없을 때가 있습니다.

뭐, 그건 그렇고.

겉보기에도 꽤 깊숙이 들어가는 일종의 논문서라, 읽어볼 마음은 안 들었습니다만... 이게 슬쩍 들춰보니 한국의 제주도 뿐만 아니라 유구(현재의 오키나와), 아이누, 동남아시아 제민족에서 인도 타밀족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서사시를 다루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떡밥을 물었습니다.

이 책은 서사시에 대해 상당히 신선한 정의를 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서사시가 소수 민족의 저항정신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지방 분권을 통제하고 주변 민족을 지배하려고 했던 일본, 중국 등지는 서사시가 소멸했다는 것이며, 고대 서사시는 개인적이고 영웅적이지만 중세 서사시는 위민적이고 국가적이라는 등의 내용이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글에 감정이 너무 들어간 점은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서사시가 사멸한 일본 중국에 대해서는 자못 비난조의 말을 퍼붓고 있었어요. 또 서구 중심의 문화 거대 담론을 타파하는 것이 정치적 물질적 우열과는 반대 급부를 가지는 서사 문학의 연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게 또 서구 중심의 거대 담론에 얽매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발상이란 말이죠. 하긴, 완전히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은 천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또한 서사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규칙성도 일일이 보편적 학설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저로서는 떨떠름하더군요. 보편보다는 특수라는 말을 너무 듣고 살아서 그런가... 아니 뭐, 서사시는 그 자체로서 좋은 것 아니겠어요? 아이누의 가무이 유카르든 제주도의 삼성 설화든 말이지요. 하긴 이렇게 생각하는 인간이니까 제가 학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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