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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게쓰 이야기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70
우에다 아키나리 지음, 이한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평점 :
최근 새로이 공부할 곳을 찾아 국립 중앙 도서관에 가보았습니다. 꽤 좋더군요.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고.
...공부와는 상관없지만... 문학관도 기웃거려 보았더니, 이게 왠일.
문학 서가의 거의 반절을 라이트 노벨이 먹고 있었습니다....ㅇ<-<
예전에는 저도 곧잘 읽었지만 요즘 나오는 라이트노벨은 당췌 읽을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이게 한편으로는 다행일지도요.
그 대신 겐지 모노가타리에 관해 모아놓은 서가를 발견했는데, 거기에 덤태기로 꽂혀 있었습니다. [우게쓰 이야기](우게쓰 모노가타리).
이 작품은 흔히 말하는 설화문학입니다. 우리나라의 [금오신화], 중국의 [전등신화]와 비슷한 종류의 작품이지요. 내용도 비슷비슷하지만, 이 작품의 특출난 점은 동북아 삼국 어디든지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의 소재를 일본적으로 해석, 묘사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어느 점이 일본다운 건지 비전공자인 제가 알 리 없지만(...) 해설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참고할 수 있으니 문제 없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것은 첫머리를 장식한 시라미네 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이쿄 법사가 여행을 하다가 스토쿠 천황의 무덤에 들려 추도를 하다 스토쿠 상황의 원령을 만나는 내용입니다.
스토쿠 상황은 양위한 천황인 상황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원정 시대의 인물로, 고시라카와 천황과 대립하여 호겐의 난을 일으켰다가 벽지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지에서 원한과 슬픔을 추스리고 경을 베껴서 천황에게 보냈더니 천황은 조정의 반역자가 보낸 것이니 저주의 문구가 쓰여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여 되돌려보냈다지요. 이에 원한이 극에 달한 스토쿠 상황은 귀신 같은 모습이 되어 자신의 피로 경에 저주를 쓰고 분사. 이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하는 원령의 필두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이쿄 법사는 스토쿠 상황을 달래기 위해 그의 생전 행동을 조목조목 따지고, 원한을 풀 것을 청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논리가 웃깁니다.
1. 상황은 정치를 바르게 한다는 유학의 가르침에 따라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셨는데, 우리 일본은 예로부터 유학의 가르침을 받들어왔다.(뻥까지마;)
2. 그런데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한 [맹자]의 책만은 싣고 오는 배가 족족 침몰해서 전해오는 바가 없다.(진짜냐?;)
3.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로 미루어보아 혁명 사상은 천황이 다스리는 우리 일본에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어이 얌마...)
...수백 년 후에 읽는 사람도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설득에 스토쿠 상황이 마음이 흔들릴 리는 없고, 스토쿠 상황은 자신의 요괴를 부려 천하를 더욱 혼란시키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던 법사는 슬퍼하면서 그 마음을 담은 시가를 읊는데, 그 시가를 읊고 비로소 스토쿠 상황은 귀신의 모습이 흐릿해지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들 유학 오해하고 있어요. 뭐, 법사의 경우 자기 본진이 아니니까 조금 오해해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맹자 까지마라 맹자 까면 사살!
그밖에 쇼킹 아시아스러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파란 두건'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덕 높은 법사가 일본을 여행하는데(덕 높은 법사의 기본 소양인 것 같군요) 왠 마을에 들렀더니 마을 사람이 법사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더랍니다. 달래 놓고 이유를 물어봤더니 마을 부근의 절에 있는 주지스님인 줄 알았다나요. 왜 주지스님 보고 까무러치나요- 문제의 주지스님은 과거 다른 곳을 여행하다가 열 몇살짜리 미소년을 데려왔답니다. 주지스님은 그 소년을 매우 아꼈지요(...그러니까, 여러분이 짐작하는 그런 방식의 아낌입니다...). 그런데 그 소년이 가엾게도 병에 걸려 요절했습니다. 주지스님은 미칠 듯이 슬퍼하다가 소년의 시체가 썩어가는 것마저 아쉬워에 살을 핥고 뼈를 빨아 마침내 모조리 먹어치워버렸다고....
...........네네네네네네크로필리아입니까!? 시대를 앞서갔어!!! 너무 앞서갔다고!!!
...아무튼 주지스님은 그 뒤로 시체 먹는 것에 맛들려서 식인귀같은 꼴로 마을 주변을 싸돌아다니며 무덤을 파헤친다는 겁니다. 법사는 그 주지스님을 만나러 가서 그의 행각을 꾸짖고 시가로 만든 선문을 내려주고 돌아오지요. 수 년 후 법사가 그 절에 다시 가봤더니, 이미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몰골이 된 주지스님이 반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선문을 계속 계속 읊고 있었다나요. 법사는 꾸짖는 말을 외치며 그 어깨를 내리치고, 주지스님은 그 자리에서 형체도 없이 무너져버렸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야 선문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집착을 경계해서 내려준 말에 또 집착하고 있었던 주지스님의 모습이 기막혔던 것이겠지.. 하고 짐작해봅니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소재가... 소재가아아아ㅏ아ㅏ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또 다른 모노가타리가 있었는데 다음에 가서 읽어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