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부처 - 한강
착하고 따뜻한 게 아니라, 고지식하고 우유부단한 걸 거예요.
표정 관리 주식회사 - 이만교
씨는 몹시 기쁘고 즐겁고 어떤 분야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사람 특유의 자만심까지도 갖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러한 기분이 얼굴 표정에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했다. 화려하게 데뷔한 선배들 중에 처신을 잘못하여 그만큼 빠른 속도로 외면당한 경우가 적지 않음을 씨는 스스로 주지하고 경계했다. 세상은 나름대로 엄격하여, 자기 표현력을 갖춘 모델에게 첫 번째 박수갈채를 보낸 다음, 그 박수갈채를 받고도 자기 본심을 감추고 겸손하고 예절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만 두 번째 박수갈채를 보내는 법이었고, 그러나 언제까지나 겸손하고 예절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보다는 다소 거만하고 자신만만한듯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세 번째 박수갈채를 보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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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가 다만 직업적인 훈련에 의해 표정을 분화시킨 데 비해, 생존해 가려면 표정이 한결 느슨하게 떠돌아야만 한다는 것을 그녀는 기자 생활을 하며 피부로 깨닫고 있는 듯했다.
나비를 위한 알리바이 - 김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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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리는 뭘 좋아하나? 우물쭈물. 나는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팀장에게 이런 말까지 들어야 했다. 겸양의 미덕으로 상대편의 오만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 자는 결국 궁지에 빠지게 된다.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팀장은 술을 사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운명이란 여자와 같아서 차갑도록 냉정하게 다가오는 자보다 정복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덤비는 자에게 기울게 마련이다. 왜냐? 운명의 신은 여신이거든. 세상 물정에 그렇게 어두워서 이 정글에서 어떻게 살아남겠어? 정글의 법칙 몰라? 자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도 안 보나? 역시 나는 우물쭈물. 팀장의 말은 언제나 분명하고 명료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는 굳이 감추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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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팀 회식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경쟁사회에서 중립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중립을 내세운 자는 승자에게도 적일 뿐 아니라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패자에게도 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