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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사랑 (특별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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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비단처럼 깔렸던 동백을 기억하는 시간, 한강의 내밀한 숨소리를 읽는 시간, 그리고 고독과 당신과의 관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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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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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생을 전부 알 수는 없다. 부모와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삶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알 수 있는 건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거나 곁에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생을 듣는다는 건 그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온전히 감옥에서 보낸 시대의 스승 고 신영복(1941~2016) 선생이다. 이미 내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거대한 울림을 주었기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을 통해 선생의 다른 글을 만날 수 있어 감사했다. 책은 어린 시절, 대학 시절, 감옥 시절의 이야기부터 1988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 후 강연과 강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한 글을 모은 에세이집으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절실한 삶의 조언이라 할 수 있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는 시간이며 세상이 두 번 바뀔 수 있는 시간이다. 신영복 선생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신념을 굽히지 않은 대가는 참으로 가혹했다.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그 시간을 ‘나의 대학시절’로 부른다. 감옥에서 무엇을 배웠단 말인가? 그것은 ‘사람’이었다.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에서 들려주는 그 시절은 이전과 다른 관계의 정립이며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곳이 아니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삶이라고 하면 맞을까. 내게는 특별히 집을 그리는 그림에 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지붕을 시작으로 집을 그린다. 그러나 집을 직접 짓는 이는 터를 그리고 기둥을 세운다는 것이다. 지붕부터 만들어지는 집은 어디에도 없는데 우리는 그것이 정답인 양 자신 있게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읽고 생각한 것, 심지어 내가 온몸으로 겪은 것에서마저도 껍데기만 얻고 있을 뿐이었고 껍데기로 누각을 짓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나의 메마르고 비정한 연상 세계에 사람의 얼굴을 하나하나 심어 나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관념적인 연상 세계를 풍부한 구체성으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181쪽)

 

 그런가 하면 감옥에서 다른 이에게 전해 들은 이응노 화백의 이야기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죄목과 형량으로 구분하는 재소자에게 이응노 화백은 “뉘 집 큰 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숫자로 대상화하는 게 아니라 인간 그 존재로 인정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감옥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무섭고 삭막한 곳이 아닐까 싶지만 그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는 참으로 아름답고 귀했다. 감옥에서 여름과 겨울 중 어느 때가 더 힘들까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일반적으로 더위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옆 사람의 체온을 감사하는 겨울이 더 낫고 옆 사람의 온기를 증오하는 여름이 더 힘들다는 글에서는 가슴이 저려왔다.

 

 스물여덟의 청년이 중년이 될 때까지 감옥에서 보냈지만 그는 그 안에서 진짜 삶을 만났다. 제한된 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시간을 공유하면서 진정한 삶의 가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한 그였지만 그가 가진 지식은 아주 작은 것이며 현장에서의 경험이야말로 진짜 지식임을 배웠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삶을 이해하고 세상은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본질을 말이다. 내부의 내부로 들어가는 경험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러니 그가 감옥에서의 시간을 배움의 시간인 대학 시절이라 명한 것이다.

 

 ‘가장 귀중한 삶의 가치란 바로 사람으로부터 건너오는 것임을 깨닫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까마득히 잊었던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진지(陣地)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참다운 삶의 가치를 지켜 주는 따뜻한 진지를 만들어 내고, 막강한 국제 금융자본의 한파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진지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229쪽)

 

 물질과 자본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사람의 가치를 아느냐고 호통치는 듯하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데 필요한 톱니바퀴처럼 자본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회의 비전은 없다는 걸 말이다.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회, 양심을 저버린 세상에 필요한 게 무엇일까. 제대로 된 가르침이 아닐까.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신영복 선생의 유고집에서 만나는 참다운 관계, 사람의 가치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책에 수록된 글은 1~2년 전의 글이 아닐진대 지금 현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투영하기 때문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소통과 미래를 향한 희망을 언급한다.

 

 유고집의 제목은 동요「시냇물」의 한 구절이다. 감옥에서 출소를 하는 이들을 위한 조촐한 타피에서 그가 부른 노래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감옥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세상을 향해 나가는 형상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물이 모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어 바다라는 거대한 세상으로 나가기를 희망하는 상징적 이미지가 아닐까. 하나의 물이 아닌 하나의 나무가 아닌 그것들이 모인 강물과 바다, 그리고 숲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영복 선생이 독방에서 혼자 부른 「엘 콘도르 파사」도 같은 의미다.  ‘길보다는 숲이 되고 싶다’는 구절에서 그는 제일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갇힌 공간인 감옥을 떠날 수 없지만 그에게 숲은 만들 수 있다는 위로였고 가능성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때로 주어진 환경을 탓하며 희망이 아닌 절망을 택한다. 무엇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감옥에서 20년 20일을 보낸 그가 희망은 아닐까. 참 스승 신영복 선생이 남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하고 다짐한다.

 

 독서는 만남입니다. 성문(城門) 바깥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자신의 확장이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확장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마치 바다를 향해 달리는 잠들지 않는 시내와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이 모이고 모여 어느덧 사회적 각성으로 비약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文脈)을 깨트리고, 우리를 뒤덮고 있는 욕망의 거품을 걷어 내고 드넓은 세계로 향하는 길섶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253쪽)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올바른 투표권을 행사하여 사람의 가치를 아는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 나만의 행복이 아닌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것. 그리하여 더불어 숲이 되어 살아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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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첫날에는 꽃을 보고 왔다. 새벽예배를 마치고 안개가 남은 산속 도로를 지나 작은 사찰에 오래된 왕벚꽃을 보고 왔다. 이른 시각에서 사진기를 챙겨온 이들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곳을 찾았을 때는 제법 넓은 곳이라 여겼는데 이번에 마주하니 아주 작고 아담한 사찰이었다. 만개한 꽃들은 꽃잎을 떨어뜨렸고 봄은 지고 있었다. 반짝이는 햇살 대신 안개를 안은 꽃은 몽환적이었고 우리는 내년 봄을 기약했다.

 

 

 

 

 

 

 어제는 연두와 초록을 만났다. 아파트 바로 옆에 작은 숲이 있다. 숲으로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울창하다고 말해도 좋을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름을 모르는 나무들, 그들이 뿜어내는 초록와 연두는 눈이 부셨다. 아름다웠다. 내 안에 더러운 것들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산책로에는 많은 이들이 걷고 있었다. 맨발로 빠르게 걷는 아주머니, 마스크를 쓰고 산길을 달리는 아저씨, 둘이서 셋이서 걷고 걷는 모습을 길이 다정하게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오늘은 투표를 하고 왔다. 예배를 드리고 근처 투표소에 갔다. 6시 전에 도착해서 조금 기다렸고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투표를 하기 전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투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될까. 알 수 없다. 결과는 9일이 되어야 알 수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만나게 될까. 우리는 조금 희망을 가져도 될까. 5월은 빠르게 흐른다. 벌써 4일이다. 징검다리 휴일이 있어서도 그렇고 다음 주에 잠깐 집을 비울 예정이라 그렇다. 5월에는 부모님과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난다. 주말에는 부모님 추도 예배를 드릴 것이다. 바쁜 철이라고 매년 시간을 조율하기가 어려웠다.

 이제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될 것이고 밭에는 초록이 무성할 터. 5월을 위한 책을 고른다.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설레는 한강의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다시 만나고 싶고 나희덕의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과 박영의 『위안의 서도  궁금하다. 5월의 시집으론 짙은 연두색 표지가 예쁜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가 좋겠다. 초록초록한 5월, 눈부신 햇살이 가득한 5월, 건강한 날들이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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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단둘이 한 방에 누워 나란히 잠을 잔 기억은 두 번뿐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기를 제외하고는 그렇다. 고등학교 입시 후 예비소집일에 맞춰 도착한 낯선 도시. 엄마와 나는 자취집을 구해야 했고 지리를 몰라 학교 근처가 아닌 곳의 모텔방에서 잠을 잤다. 아침으로는 식당이 아닌 방에서 배달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7년 후 같은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졸업식이 있던 날, 사진을 몇 장 찍고 돼지갈비를 먹었다. 그 돼지갈비는 내가 엄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 드린 음식이었다. 그 저녁에는 엄마를 잠시 혼자 방에 남겨 두고 외출을 했다. 잠이 들기 전까지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엄마가 택시에 두고 내린 작은 가방에 무엇이 들었냐고 물었던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봄이 가까이 있던 계절이었다.

 

 이 책에 담긴 모든 문장의 주어는 엄마다. 어떤 이는 이 글이 기행문인 되기엔 부적절하다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소설로 삼기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자전소설쯤으로 타협을 보려 할까. 어떻게 불리더라도 모든 문장이 엄마를 중심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엄마가 겪은 사실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상상한 것들로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느낀 것들도 엄마를 이룬다. 그 전부가 엄마다. (157쪽)

 

 김탁환의 『엄마의 골목』을 읽기 시작한 날, 우연하게 친구와 엄마 이야기를 했다. 작년에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친구는 철쭉이 피는 걸 볼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울었다. 친구가 울음을 그쳤을 때 나는 『엄마의 골목』을 읽고 있다고, 엄마와 아들이 함께 걷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엄마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나만 엄마가 없는 게 아니라 이제 친구에게도 엄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와 함께 발을 맞추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일은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일처럼 여겨진다. 어리석게도 그렇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도 많을 터.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철이 들고난 후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도란도란 길을 걷은 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만다. 엄마보다는 친구, 엄마보다는 연인, 엄마보다는 새로 이룬 일가가 먼저였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가 아들과 만나 자신의 삶의 터전인 진해를 걷는 엄마의 큰 기쁨이 곳곳에서 전해져 너무도 부러웠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연애 이야기, 노년에 배운 하모니카를 배우는 엄마의 연습 노트, 늦은 밤 집에 온 아들에게 차려주는 엄마의 밥, 아들이 쓴 소설을 읽고 감상을 들려주는 엄마. 사소하면서도 소소한 모든 게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일상인지 말이다. 엄마의 일터, 엄마의 고향, 엄마의 추억이 있는 공간에 다시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는 일.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며 그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모르며 사는 우리들. 함께 산책하기.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아침에 짧은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꽃과 나무가 너무 예쁘다. 예전에는 몰랐던 기쁨이다. 어른들 말씀이 모든 게 꽃이라더니, 맞는 말이었다. 종종 다큐멘터리나 드라마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겨울을 뚫고 나온 산나물과 들꽃을 보며 대견해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내년 봄이면 다시 필 꽃이라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분들에게는 내년 봄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걸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일흔이 넘은 삶을 알 수 없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뵙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도 제목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살아갈 삶인데도 그렇다. 여느 걸어본다 시리즈와 다르게 이 책에서는 그 길이 걷고 싶다거나 그곳에 가도 싶다는 생각이 아닌 혼자가 아닌 함께 걷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한다.

 

 좋아하는 곳은 갈 때마다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준다. 같은 풍경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다른 일상이 되기도 한다. 어제 본 꽃들은 지고 새로운 꽃이 피는 걸 발견하는 나의 산책길처럼 말이다. 걸어본다 시리즈는 만날 때마다 걷는 즐거움이 자란다. 글을 따라 익숙한 공간에 머물고 낯선 도시를 탐색한다. 독일 뮌스터를 산책하며 쓴 허수경의 『너 없이 걸었다』엔 이런 구절이 있다. 삶이라는 것은 버릇을 되풀이하며 기억을 재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따뜻한’ 기억에 대한 소망은 그 안에서 부풀어오른다.’ 따뜻한 기억을 간직한 삶은 어떤 추위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와 함께 진해 골목을 걷고 걸은 김탁환에게는 그런 기억이 있으니 앞으로 삶은 얼마나 충만할까. 엄마는 곁에 없지만 엄마 같은 고모와 언니들이 있다. 늦기 전에 함께 혼자 걷는 봄이 아닌 함께 걷는 봄으로 채워야지. 내가 모르는 엄마를 알고 있는 고모, 내가 모르는 오빠를 알고 있는 올케언니, 내가 모르는 꼬맹이 나를 알고 있는 언니와 봄을 걸어야지. 혼자 걷는 봄은 이제 안녕.

 

 엄마가 죽고 나면 이야기가 끝날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들인 내가 엄마와의 이야기를 쓸 것이니까. 아들인 나까지 죽고 나면 이야기가 끝날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죽은 모자가 나눈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을 테니까. 모자의 이야기를 읽은 누군가마저 죽고 나면 이야기는 끝날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쓴 바로 이 책을 읽지 못했다 해도, 세상의 모든 엄마를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들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니까. (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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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30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1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딥 워크 - 강렬한 몰입, 최고의 성과
칼 뉴포트 지음, 김태훈 옮김 / 민음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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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빠른 시간에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를 원한다.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내고 완벽한 성과물을 얻을 수 있을까? 학창시절의 시험기간에 짧은 시간을 투자하고 좋은 성적을 내던 친구의 비결은 뭐였을까? 수많은 정보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에게 칼 뉴포트는 『딥 워크』가 답이라 말한다. 기계와 경쟁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몰입과 집중으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도 그것이라 말한다. 과연, 딥 워크는 무엇일까? 우선 저자가 정의한 딥 워크(Deep work)는 인지활동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완전한 집중의 상태에서 수행하는 직업적 활동을 말한다. 딥 워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능력을 향상시키며, 따라 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얼핏 집중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칼 뉴포트는 딥 워크(심층적 작업)이라는 활동의 이미지가 아닌 구체적인 예를 들어 딥 워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명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심리학자 칼 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칼 융은 취히리 호숫가에 타워라는 이름의 돌집을 짓고 그 안에서 하루에 2시간씩 집필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2시간의 딥 워크로 논문과 저서들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융처럼 저마다 딥 워크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지금 일하는 사무실이 집이, 그 어디에서라도 딥 워크를 할 수 있다는 게 칼 뉴포트의 주장이다.

 

 어떻게 하면 완전한 집중의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20세기 학자 칼 융이 아닌 현재 최고의 성과를 내는 애덤 그랜트 교수의 예를 보자. 그는 가을 학기에만 강의를 하고 나머지 봄과 여름에 연구에 집중한다. 연구에 집중할 때에도 메일에 답을 하지 않고 교수실에 있더라도 자리 비움으로 공지한다. 애덤 그랜드의 딥 워크는 집중 강도를 극대화하여 투입 시간당 성과를 극대화하는 생산성 법칙을 활용한 것이다.

 

 고품질 작업 성과 = 투입 시간 × 집중 강도

 

 분명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애덤 그랜드처럼 메일을 확인하지 않고 교수실의 방문자를 거절하며 연구하는 이는 많지 않다. 바로 우리가 놓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몰입을 위해 주변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일이 딥 워크의 시작인 것이다. 저자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SNS로 시작하는 현대인에게 분신 같은 소셜 미디어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인터넷과 SNS의 노예가 된 이들에게 과감하게 제안한다. 업무용 메일과 SNS의 사용으로 소비하는 시간을 몰입의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그것들의 이점에 대해 언급하겠지만 꼭 필요한 사용이 아닌 습관적으로 낭비하는 웹 쇼핑의 시간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글에 집중하지 못하고 메일과 문자 알림에 즉각 확인하고 있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는 다른 창을 열지 말고 문서만 열어놓고 가까운 곳에 휴대전화를 두면 안 되는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적확한 사실을 놓친 것이다.

 

 중요한 일이 명확하면 중요치 않은 일도 명확해진다. (63쪽)

 

 책에서 저자가 많은 사례를 통해 언급하는 딥 워크를 위한 4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누구나 최고의 몰입 상태가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 포인트인 4가지 원칙인 1 몰두하라, 2 무료함을 받아들여라, 3 소셜 미디어를 끊어라, 4 피상적 작업을 차단하라,를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몰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목표를 수립하고 목표를 위해 딥 워크에 들인 시간을 지표로 삼고 딥 워크에 들인 시간을 눈으로 확인하고 성과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자리를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딥 워크 외의 시간에 대한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쉽게 말해 일할 때는 열심히 일하고 놀 때도 열심히 놀라는 말이다. 두 번째 원칙인 무료함을 받아들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산만함을 극복하는 훈련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는 인터넷 구간과 오프라인 구간을 나눠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적절한 시간 안배로 일상에 쉽게 적용한다면 인터넷 없는 일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일상에 익숙해지면 세 번째 원칙은 소셜 미디어를 끊은 것도 어렵지 않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하면 재미를 위한 인터넷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앞선 세 가지 원칙을 지킨다면 마지막 피상적 작업을 차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지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종종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면서 수행하는 부수적 작업인 피상적 작업을 왜 줄여야(새로운 가치창출로 이어지지 않으므로) 하는지 스스로 알게 되니까. 그러므로 저자가 인용한 행동과학 전문 칼럼니스트 위니프리드 갤러거의 나는 집중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최선의 삶이기 때문이다. 란 말은 옳다.

 

 모두가 책에서 소개한 연구자, 철학자, 교수처럼 지식 노동자는 아니지만 집중력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의미 없이 허비한 시간을 정비하고 몰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의미로 가득 찬 삶을 만든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찾는 과정, 나에게 집중하는 삶, 그 역시 딥 워크로 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딥 워크는 따라 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

 

 

 #딥워크 #몰입 #민음사 #칼 뉴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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