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구슬
김휘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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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이 공포가 된 지 오래다. 친근한 마음을 쉽게 표시해서도 안 되고, 친절을 베풀어도 안 된다. 반대로 누군가의 호의를 냉큼 받아서도 안 된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어쩌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그러니 타인과의 관계에 적당히 선을 긋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게 현명한다는 누군가의 조언은 일리가 있다. 김 휘의 소설집 <눈보라 구슬> 속 인물들이 겪는 일들도 그렇다. ‘눈보라 구슬’이라는 예쁜 제목과 달리 서늘한 기운을 안겨주는 표지는 마치 주변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목격자>는 살인사건 용의자와 닮았다는 이유로 주변의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주인공 종일이 하는 일은 불법으로 신분증을 위조하는 일이다. 그 역시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며 살아간다. 사건 이후 자신을 미행하는 시선 때문에 불안하다. 범인은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종일은 옆집 남자의 여자친구 소연이 살해당하는 것을 본다. 소연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후 돌아가지 않고 소연을 기다리던 중 목격한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가 거기 있었다. 그러나 종일은 침묵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종일을 용의자가 아닌 목격자로 인정할 수 있는 이는 몇 명이가 될까. 반대로 우리가 종일이라면 신고할 수 있을까.

 

 신고포상금을 받는 사진을 찍는 <아르고스의 눈> 속 화자도 다르지 않다. 항상 누군가의 잘못을 사진으로 찍는 그는 어느 날 지인의 부탁으로 공작새 박제를 들인다. 그 후로 그는 자신을 향한 수많은 눈들로 벗어날 수 없다. 과거 자신을 향했던 누군가의 눈부터 현재 자신이 사진기를 통해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까지 혼란스럽다. 지인은 그저 착각일 뿐이라 무시하지만 그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잊고 있었던 죄의식을 불러오는 것이다.

 

 ‘공작의 깃에 있는 무늬가 마치 사람 눈처럼 생겼지. 이 이야기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전신에 백 개의 눈을 가진 거대한 괴물이 있었지. 등이나 뒤통수에도 몇 개의 눈이 있는 것으로도 묘사되기도 해. 그래서 모든 것을 보는 자라는 뜻의 파노프테스라는 별명도 얻었어. 모든 것을 보다고? 그래, 못 보는 것이 없으니 사각이란 개념도 없었을 거야. 어쩌면 인간의 은밀한 속내까지 투시해냈을지도 모르지.’ (49~50쪽)

 

 김 휘는 이처럼 우리 삶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와 불안을 매우 사실적을 표현한다. 때문에 소설 속 인물은 불편을 감수하며 타인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괴로운 시간을 보낼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자발적 고립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반면 간절하게 누군가의 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나의 플라모델> 속 탈북 소년 종안은 플라모델 가게 플라드림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지저분한 옷차림으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자신과 같은 탈북자라는 사실과 미그 19기 조종사였다는 걸 안 종안은 가게에서 플라모델 미그 19기를 훔쳐다 준다.

 

 ‘미그 19기는 일정한 각도를 유지한 채 나발 아저씨 손에 천장 높이로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이륙? 그랬다. 이륙이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팔뚝만 한 미그 19기 모형은 조금 전 다락방 나무 바닥을 박차고 이륙했다. 나발 아저씨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피이융, 하는 엔진 소리는 힘찼다. 신문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벽과 비스듬히 기울어진 천장은 하늘이 되었다. 칠이 벗겨진 밤색 탁자와 나무 바닥과 누덕누덕한 매트리스는 강과 산이 되었다. 미그 19기는 궤도를 공전하듯 방 안을 날았다.’ (189~190쪽)

 

 종안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잊은 채 아저씨의 미그 19기를 따라 날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창용은 종안이 플라모델을 훔친 걸 빌미로 가게를 터는 일에 끌어들인다. 비밀을 지키고 무선 조종 미그 19기를 받은 종안은 탈북자 아저씨에게 선물한다. 경찰은 아저씨의 집에서 발견된 플라모델을 증거로 범인으로 체포한다. 종안과 탈북자 아저씨는 서로에게 손을 내민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것만이 진실인 것이다.

 

 김 휘는 이외도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감염>을 통해 공포 조장하는 사회, 사악한 범죄도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현대인의 욕망을 고발한다. 소설을 통해 지속되는 무관심의 결과가 결국 모두를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는 무서운 결말을 보여준다. 호러 영화 그 이상의 섬뜩한 이미지는 부정할 수 없는 숨겨진 인간의 내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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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탁기가 고장 났다. 냉수 급수가 되지 않는다. 김희진의 소설 <옷의 시간들>처럼 애인이 떠난 것도 아닌데 세탁기가 고장 나고 말았다. 오랜 시간 사용했기에 고장이 난 것이다. 나는 소설의 주인공 오주처럼 빨래방에 갈 수 없다. 내가 알기엔 이 소읍엔 빨래방이 없다. 내게 속한 옷들, 수건들, 양말과 속옷들에게 바깥 구경을 시켜줄 수가 없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살 적에도 단 한 번도 빨래방을 이용하지 않았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세탁기들과 빨래가 다 되기를 기다리며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한다. 다시 이 소설을 읽어볼까. 한데 책이 어디에 있을까.

 

 빨랫감을 바구니에 옮겨 넣고 나름 애를 써 봤지만 세탁기는 화가 난 사람처럼 뚱하다. 검색을 통해 얻은 지식을 실천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었고, 상담을 예약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상담이 시작되었지만 이번엔 상담에 필요한 정보를 기록하지 않아 지속되지 않았다. 결국 다시 상담 예약을 해야만 했다.

 

 전화를 기다리는 일은 조급함을 동반한다. 그리고 지루하다. 상담 전화가 끝났다고 해서 고장 난 세탁기가 바로 수리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방문 기사를 기다려야 하고, 부품을 바꾸게 되면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니까 나의 조급함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급하다. 전화를 받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내가 받지 않는다면 다시 전화가 걸려 올 텐데 말이다. 세탁기 고장으로 머리가 어지럽다. W. G. 제발트의 소설 <현기증. 감정들>의 표지 이미지처럼 말이다.

 

 하루 종일 세탁기가 나를 지배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단어는 세탁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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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10-2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같아요

자목련 2014-10-27 10:49   좋아요 0 | URL
그리 보아주시면 영광이지요. 하늘바람 님, 고맙습니다^^

조선인 2014-10-2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수 급수가 안 된다면 일단 온수급수와 연결부위를 바꾸면 어떨까요?

자목련 2014-10-28 09:57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방문 기사분이 부품을 교체하는 것보다 그 방법을 쓰면 어떠나고 하셨어요.
아주 오래된 세탁기라 온수급수도 안 될 경우에 부품을 교체하는게 더 낫다고 하시더라구요.
물론 출장비는 지급되었지요, ㅎ
조선인 님,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mira 2014-10-2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세탁기 돌려놓고 이리 시간 때우고 있네요 ㅎㅎ

자목련 2014-10-28 09:54   좋아요 0 | URL
지금쯤 어제의 빨래가 잘 마르고 있겠네요^^
 

 

 어떤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나이를 지녔다. 그렇게 믿으며 살고 있다. 지나고 보면 모두 다 대수롭지 않은 감정들이란 말이다. 어제가 비의 시간이었다면 오늘은 햇볕의 날들인 것처럼 말이다. 어쨌거나 우산이 지배했던 어제의 물기는 증발해버렸다. 베란다에 널어 놓은 장우산은 말끔해졌다. 그런 우산을 바라보는 일은 유쾌하다. 좋아하는 비가 내리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기다렸던, 정말 기다렸던 김연수의 산문집이 나왔다. 그러니까 나는 이 산문집을 봄부터 기다렸다. 국화꽃 피는 가을에 만날 줄도 모르고 목련이 피는 순간부터 기다렸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제부터 김연수의 다른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는 말이다. 『소설가의 일』, 간단 명료하고 매우 정확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오늘 충동적인 구매를 했다. 산문집에 언급된 러셀 셔먼의 『피아노 이야기』를 주문한 것이다. 절판이라 중고로 주문했다. 알라딘 중고로 주문한 경우는 두 번뿐인데,  모두 김연수에 의한 책이었다. 나머지 한 권은  『선영아, 사랑이라니』 였다. 아, 나는 왜 이토록 김연수에 빠져드는가.

 

 김연수와 함께 황정은의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도 반갑다. 제목에서 전해지는 결연한 의지가 어떤 용기를 부여하는 듯하다. 그런 제목으로는 마류야마 겐지의 『나는 길들지 않는다』 있다. 지난 산문집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는 기대가 높았던 탓인지 흡족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산문집은 조금 더 강렬한 느낌이면 좋겠다. 그리고 존 그린의 장편 『이름을 말해줘』는 아주 예쁜 소설일 것 같다. 분명 그럴 것이다. (이미지의 크기는 애정의 크기다.)

 

 

 

 

 

 

 

 

 

 

 

 

 

 

 

 

 

 

 

 ‘휴식이란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와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나를 둘러싼 반경 10미터 정도,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구나.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몇 명, 혹은 좋아하는 물건들 몇 개. 물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계가 그렇게 넓을 이유도, 또 할 일이 그렇게 많을 까닭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잘 쉰 셈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 53~54쪽)

 

 

 읽지 않은 책이 많다는 건 마냥 즐거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빨리 읽어줘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빨리 김연수와 황정은의 소설을 읽어야만 한다. 읽고 책장에 넣어둔 책은 그 느낌을 표현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 독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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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틀넥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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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증명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갖가지 서류가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 타인의 인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말이다. 가깝게는 가족, 멀게는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이다. 그들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나임을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둘러싼 환경이 변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는 그런 삶 말이다. 인기 미스터리 작가로 잘 알려진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보틀넥> 속 주인공 료가 처한 상황이다.

 

 료는 2년 전 죽은 여자친구 노조미를 추모를 위해 절벽을 찾았다. 노조미가 생각하다 그만 절벽에서 떨어진다. 의식을 차린 료는 절벽이 아닌 집 근처 공원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집으로 돌아가 벨을 누르니 낯선 여자가 맞이한다. 놀랍게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은 누나 사키였다. 집 안에 놓인 사물의 위치와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비교하며 사키와 료는 서로를 인정한다.

 

 “두 개의 가능 세계가 교차했다는 헛소리를 가설로 삼는다면, 단순히 합류한 게 아니라 네가 내 세계로 왔다는 게 확실한 것 같지?” (46쪽)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료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사키뿐이다. 사키는 료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깨어난 공원을 찾으며 뭔가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그런데 료가 공원에서 만난 건 살아 있는 노조미였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노조미는 죽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노조미는 료를 알아보지 못한다. 혼란스러운 료는 사키에게 노조미에 대해 묻는다. 사키는 자신을 잘 따르는 밝고 명랑한 후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자신의 세계에서 노조미는 죽은 걸까?

 

 료가 존재하는 세계와 사키가 존재하는 세계는 너무 달랐다. 자주 가던 단골 분식집, 옷가게, 도로의 나무까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부모님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따뜻하고 환한 기운이 가득했다. 료가 어둡고 부정적이었다면 사키는 밝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료는 점점 자신이 아닌 사키가 태어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사키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료는 사키를 통해 이제껏 느끼지 못한 가족의 사랑을 경험한다.

 

 ‘사키를 꽉 붙들고 있으려니 기분이 무척 복잡했다. 할 수만 있다면 거리를 두고 싶은 상대방에서 어쩔 수 없이 딱 달라붙어 있다. 그럴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어느새 호의에 기대고 있다. ……게다가 그러면서도 별로 열등감이 들지 않는다. 그렇구나. 꼭 가족 같다.’ (261쪽)

 

 노조미의 죽음을 밝히는 추리적 요소와 시공간 이동이라는 판타지를 접합한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소설이다. 더불어 자신의 존재 의미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라 볼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하는 ‘만약에’란 설정은 이 소설에서만큼은 결코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특별하다. 내게는 료가 자신의 세계로 회귀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깨고 싶지 않은 꿈처럼 신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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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왜 읽는 걸까? 그렇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냥 읽는다. 아름다운 시어에 반해서, 내가 보지 못하는 사물의 풍경과 내면을 만날 수 있기에 읽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절로 터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읽어야 하는 도전 과제는 아닐까. 가끔씩 생각나는 시가 있다. 그렇다고 외울 수 있는 건 아니다. 학창시절, 그러니까 어린 왕자와 여우가 서로를 길들이는 모습에 반했던 나름 순수했던 시절을 제외하면 시를 외우려는 의지는 사라졌다. 그냥 읽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든다.

 

 그래도 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시집은 많다. 미안하게도, 추천할 수 있는 명확한 설명을 덧붙일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저, 이런 시를 함께 읽고 싶은 바람을 전할 뿐이다. 좋아하는 시인은 점점 늘어나고, 읽고 싶은 시집도 많고, 곁에 두고 싶은 시집도 많다. 이 가을, 향이 좋은 차 한 잔, 혹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시를 한 잔 마셔도 좋을 것이다. 이런 시는 어떨까? 안현미의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에 수록된「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의 전문이다.

 

 

 서둘러 밥을 먹고 낙산으로 산책 가는

 점심시간

 산동에 담벼락에 누군가 그려놓은 낙타가

 베란다 그늘 아래 서 있다

 그늘 아래서 꿈꾸고 있다

 시원한 꿈이겠다

 

 내가 탐하는 그늘은 고비사막에 있다

 내 더듬이는 한번 더듬은 것들을 지문처럼 새긴다

 

 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

 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

 

 나는 그게 시라고 생각한다

 

 서둘러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점심시간

 

 내가 먹은 밥은 그곳에 있다

 나는 그게 시라고 쓰고 싶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에서 시는 태어난다. 그곳에 두고 온 밥을 시라 말하는 시인 덕분에 시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눈에 닿는 풍경, 그 안에서 어떤 아늑함과 어떤 시간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을 닮고 싶다. 대단한 소재가 아닌 예사로운 일들로 나열된 하루도 시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하루를 채우는 조각들이 시가 된다면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상처와 고통은 이런 시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눈물의 입구」을 통해 잠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린다. 이 시를 먼저 읽은 당신이라면 반짝이는 눈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았더라도 모른 척 그냥 지나쳐 주면 좋겠다.

 

 

 여자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혼자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바람은 불어오고

 또다른 국면에서는 미늘에 걸린 물고기들이

 죽음을 향해 튀어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수동 카메라도 여자의 이름을 함께 들여다본 사람

 불가능을 사랑했던 시간과 풍랑이 잦았던 마음

 잠시 핑, 눈물이 반짝입니다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의 비늘도 반짝입니다

 모든 오해는 이해의 다른 비늘입니다

 아픈 이마에선 눈물의 비린내가 납니다

 생각해보면 천국이 직장이라면 그곳이 천국이겠습니까?

 또다른 국면에서는 사랑도 직장처럼 변해갑니다

 

 사, 라, 합, 니,

 이응이 빠진 건 눈물을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첫사랑을 빌려 읽기도 합니다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 창비 / 2014년 5월

 

 

 

 그리고 이런 시를 읽는다. 윤희상의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속 「비밀」같은 시.

 

 

 그늘을 따라서

 우연히 숲으로 갔습니다

 숲에서 보았습니다

 나무와 어둠이 합쳐지는 것을

 나무는 없습니다

 더 있다가, 나와 어둠이 합쳐졌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는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둠이 하는 말입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혹시, 밤하늘의 작은 별들이 보았는지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밤하늘의 작은 별과 어둠이 합쳐지는 것을

 나는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아름다워서, 자꾸만 읽게 된다. 그리하여 밤이 간직한 어둠 속에서 작은 빛으로 발하는 별빛만이 알고 있을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이런 시를 읽을 수 있어, 참 좋다. 당신과 함께 읽고 싶다. 이런 시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오래 남는 말』이란 제목처럼 오래 남아 기억되면 좋겠다.

 

 

 지금 번지고 스미는 것은 고즈넉함이다

 

 화실 바닥에 손수건이 떨어졌다 소리나지 않게

 숨을 쉰다 나는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는

 평평한 허파를 보고 있다 언뜻 보면 잎이 큰

 칠엽수 나뭇잎 같기도 하고 하다 약간 들썩이며 흔들린다

 당연히, 손으로 주우려고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것은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 자국이다

 

 낮은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친구의 애인이 나에게 말했다

 

 혹시, 알아요?

 수채화는 젊은 사람들이 그리기 어렵다는 것을

 

 왜요?

 

 수채화는 물감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다리지 못해요

 물감이 다 마르기 전에 다시 손이 가거든요

 버릇처럼,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윤희상 / 문학동네 / 2014 년 6월

 

 

 

 

 감당할 수 없는 젊음을 무기로 믿고, 어디서든 푸른 유리 조각처럼 빛나는, 튀어나온 못처럼 상대를 경계하던 시절엔 몰랐을 것들을 알려주는 시. 시는 왜 읽는 걸까. 어쩌면 겸손을 배우기 위해, 어쩌면 상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읽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는 동안 폭발할 듯 커지는 분노나 화가 사라지기 때문은 아닐까. 시를 읽는 동안 짧은 시어에 담긴 무언가를 찾고 싶어 집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찻 잔에 시를 따르는 손, 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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