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낯선 곳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건 사람과 이정표뿐이다. 잘못된 방향을 제시할지라도 믿고 나간다.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왔을 때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들인 시간이 아깝고 화가 나도 돌아가야 한다.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언제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과감하게 돌아나가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이는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계속 가기도 하고 어떤 있는 그 끝에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은 낯선 길을 가는 것이다. 모든 게 처음이기에 의지할 누군가를 찾는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경험으로 확인하고 새로운 것을 인식한다. 낯선 길을 동행할 이가 있다면 점점 그 길은 익숙해진다. 반대로 동행하는 이와 헤어지고 혼자 걸을 때 더 편안할 수도 있다.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혼자 또는 같이의 삶을 생각했다.

 

 수상작인 황정은의「웃는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d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d는 혼자가 된 것이다. dd가 사고로 죽고 세상은 이전과 다른 것이 되었다. dd와 같이 있을 때 모든 것의 존재는 그 자체로 빛났고 삶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제 삶은 그저 그런 것이다. 세상과 d는 소통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dd를 대신할 존재는 없으니까. 이정표를 잃은 d는 용산 세운 상가에서 택배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아니 그냥 산다. 그런 d에게 앰프와 스피커를 고치는 60대 중반의 여소녀가 말을 건다. 침묵이었던 d의 세상에 소리가 들어온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소리를 만지고 소리에 둘러싸인 여소녀의 가게에서 들리는 오디오의 소리. 그것은 dd을 불러왔다. 잃어버린 세상을 찾은 것처럼 d는 음악에 빠진다. 세상과 단절되었던 d에게 여소녀와 오디오의 선율이 소통의 시작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인식한다고 하면 맞을까. 황정은의 여느 소설이 그렇듯 「웃는 남자」는 개인의 상실과 절망을 세운상가의 그것과 결합시킨다.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산업화를 통해 세운상가의 번영과 쇠락을 지켜본 여소녀의 생이 그러하고 d 앞에 펼쳐진 시위 현장이 그러하다. 희망과 변화를 외치며 행진하는 그들과 그 곁을 지나가는 d는 그 속으로 합류하지 못하지만 외면하지는 않는다. 조금씩 세상의 소리와 마주하는 d. 그렇다고 그가 제목처럼 웃는 남자가 된 건 아니다. 여전히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d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어떤 소리로 채워질지 기대할 수 없지만 그 소리가 궁금하다.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다만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 (「웃는 남자」, 94쪽)

 

 김숨의 「이혼」은 주도적으로 혼자를 선택한 삶이다. 소설 속 민정은 엄마의 이혼을 바랐다.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 엄마가 이혼하기를 원했다. 모든 서류를 준비했지만 주저하는 엄마를 두고 민정은 집을 나온다. 이혼을 원하면서도 사회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는 엄마. 그런 민정이 이제 자신의 이혼을 결정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철식은 왜 이혼하려는지 민정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혼 요구를 묵살한다. 결혼이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니듯 이혼도 그렇다. 앞으로 삶을 제대로 가기 위해 민정은 돌아 나왔지만 편혜영의 「개의 밤」속 김은 계속 가는 걸 택했다. 가족이 될 수 없는 처가 식구들과 그대로 살기로 한 것이다. 장인은 김에게 군대 폭력의 가해자인 처남을 위해 탄원서를 받아오라고 말한다. 취직을 시켜주고 전원주택에서 살게 해준 장인이다. 처남은 그저 운이 나빴고 실수를 했다며 김에게 동의를 강요한다. 처남이 죄를 지었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걸 알지만 김은 어느새 장인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며 백수로 살아가는 진수의 일상을 다룬 김언수의 「존엄의 탄생」에서 진수 곁에는 같이 할 이가 없다. 동네 떠돌이 개도 반겨주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이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에게 삶은 얼마나 처량하고 쓸쓸한가. 윤성희의 「여름방학」의 주인공 병자도 마찬가지다. 노년의 삶에 대한 계획이 명예퇴직으로 인해 조금씩 수정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오빠도 떠나고 어머니를 부양했고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파혼을 당한 과거와는 다른 삶을 위해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진수의 현실과 꿈을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면 병자를 위로해 줄 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온라인과 sns으로 소통하고 감정을 소모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에서는 오랜만에 재회한 남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난 감정이 서로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기호의 「최미진의 어디로」는 중고 사이트에서 자신의 책을 덤으로 주는 판매자와 직접 거래를 시도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자신의 소설이 그렇게 엉망이냐고 따지러 나왔지만 판매자의 사연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사인본을 비롯해 책만 남기도 말없이 떠나간 연인의 사연이라니, 멋쩍고 허탈할 뿐이다.

 

 7편의 소설 속 인물 가운데 ‘웃는 남자’는 없다. 상황을 모면하려 쓸쓸한 농담을 던질 뿐이다. 소설을 읽는 일과 사는 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과 인생이 어떻게 동급이 될 수 있냐고 물어도 할 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럴 때가 많으니까. 소설을 읽을 때 재미와 웃음과 감동을 기대한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이 소설이 아닌 현실 속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면 소설은 내게 어렵고 복잡한 생각을 던진다. 살면살수록 낯설 길에 홀로 내던져진 기분 말이다. 『웃는 남자』를 읽으면서 행복한 결말을 바란 건 아니다. 이젠 소설이나 현실이 비슷하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무를 받는다.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생을 사는 거라고 중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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