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가장 가까운 사이라서 뭐든 나중으로 미룬다.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남은 형제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커졌지만 표현은 그대로다.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일상을 나눠야지, 생각하면서도 실천은 어렵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을 읽으면서 나와 가족의 관계에 대해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눈빛을 교환하는 시간은 너무 짧고 때때로 서로의 기분을 살필 뿐 공유하는 감정은 줄어든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수록된 6개의 단편은 모두 가족에 관한 소설이다. 표제작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제목처럼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거울을 통해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배경으로 손님으로 찾아온 젊은 청년에게 자신의 지난 삶을 들려주는 이발사의 이야기다. 아름다운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아무 기대 없이 이발사의 사연을 듣다가 결국 울컥하게 된다. 천륜이라 말하는 부모와 자식의 사이, 그 사이를 이어주는 건 무엇일까.

 

 나머지 단편에서도 가족을 다룬다. 언제나 서로를 지켜보며 살아갈 것이라 믿었지만 사고로 딸을 잃은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부부의 일상을 그린「성인식」, 엄마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온 후 16년 만에 치매에 걸린 엄마와 재회하는 딸의 감정을 다룬 「언젠가 왔던 길」, 결혼 후 일 밖에 모르는 남편에게 화가 나 아이와 함께 친정에 온 아내에게 도착한 이상한 문자의 흥미로운 이야기 「멀리서 온 편지」, 가출을 감행한 소녀가 비닐봉지를 쓴 소년을 만나 바다를 찾아가는 「하늘도 오늘은 스카이」,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고치는 시계방 주인과 나누며 아버지를 추억하는 「때가 없는 시계」.

 

 저마다 애틋한 사연에 가슴이 먹먹하지만 「성인식」과「때가 없는 시계」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열다섯 살에 죽은 딸의 성인식에 대신 참석하기로 한 부부, 성인식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딸의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면서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도 애잔하면서도 따뜻하다. 열다섯 살에 멈춰버린 딸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 두려웠던 부부에게 성인식은 의식이었다. 온전한 이별을 위한 의식, 그것은 딸을 향한 영원한 사랑의 맹세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는 늘 같은 자리에서 맴도는 슬픔을 어느 시점에서는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 나와 미에코에게도 성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성인식」, 44쪽)

 

 아버지의 유품인 손목시계를 다룬 「때가 없는 시계」에서 오래된 시계를 고치는 주인과 나누는 대화는 기억 속 아버지를 불러온다. 저마다의 시간에 멈춰있는 시계방의 시계에 대한 사언을 들려주는 시계방 주인. 그것은 시계방 주인의 딸과 아내에 관련된 시간이었다. 아픈 딸이 죽은 시간을 기억하려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통해 죽은 아버지를 회상하는 건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 아버지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내가 겹쳐지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자기 부모라도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법이다. 절대 특별한 존재는 아니었다. 어느 면에서나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억 속의 아버지 나이를 넘긴 지금은.  (「때가 없는 시계」,  246쪽)

 

 태어난 시간을 기억하고 있으니, 죽은 시간도 기억해야겠죠.(「때가 없는 시계」, 261쪽)

 

 공습 당시 시간에 멈춰 선 놈, 운 좋게 아직 움직이고 있는 놈. 그때였습니다. 내가 깨달은 게. 시계가 새기는 시간은 하나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른 시간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때가 없는 시계」, 264쪽)

 

 아버지의 시간은 어떠했을까. 감정을 절제하는 걸 학습한 아버지 세대. 부모를 이해하려는 순간, 그들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시간만이 아니다. 형제의 시간, 자녀의 시간도 그러하다. 같은 시간을 살지만 여전히 나의 시간에만 관심을 갖고 살고 있다. 가족의 시간을 챙기려 하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이라고 단정한 것이다. 소설 속 가족의 사이는 우리의 그것이었다. 가족과 가족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겠지만 멀어지는 것보다는 가까이 다가가는 게 더 낫다. 부딪혀 싸울지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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