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든 때를 벗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철 수세미에 힘을 가해 열심히 닦아내거나 화학 약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힘을 가하면 가할수록 팔은 아프고 진즉 청소를 잘 할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면서도 벗겨진 때를 보면 흐뭇하기도 하다. 주방을 청소하면서 흘러내리는 묵은 때를 보면서 이렇게 미움처럼 묵은 감정도 사라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옅어진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한 번씩 불쑥 올라오는 감정들, 제대로 된 이별 혹은 관계 정리를 하지 못한 탓이다. 대체로 그들은 좋은 지인이었거나 사랑했던 이들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흐지부지 연락이 끊어지거나 내 스스로 끊어내지 못한 감정이다. 어쩌면 아직 그리움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해가 되었다지만 별단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딘가에서는 굵은 눈발이 내리고 이곳은 흐리기만 하다. 새해의 다짐 같은 것 없다. 다만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키운다. 한 해를 보낸 기록 같은 것을 몸에 지니고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살아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 말이다. 이만큼 잘 살았다는 징표가 되기도 할 텐데.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어떤 날은 괜찮았고 어떤 날은 아주 나빴고 어떤 날은 우울했다. 계획했던 대로 읽고 쓴 날은 괜찮음에 속한다. 그것들을 이어가는 건 참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신간 중에서 가장 궁금한 책은 『읽어본다』시리즈다. 동시에 다서 권이 나왔다. 편집자와 북카페 운영자(부부), 시인과 시인(부부), 온라인 서점 MD와 일간지 출판담당 기자(부부), 뮤지션 요조, 의사 남궁민의 독서일기라고 한다. SNS에 올라온 글들은 대부분 출판 관계자의 글들이 많기에 독자의 리뷰를 기다린다. 매일매일 책을 읽고 일기를 남긴다는 건 대단한 일이기에 기대가 되면서도 직접 한 권, 한 권 살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난다의 『걸어본다』시리즈처럼 계속해서 나올지 지켜볼 만 하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책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참으로 즐거울 것 같다. 더불어 한 권의 책을 각기 다른 시기에 읽고 그것에 대한 감정을 돌아보는 것도 말이다. 책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면서도 나눈다는 의미도 남다를 듯하다. 이 모두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가능한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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