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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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도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높은 건물, 깨끗한 거리, 화려한 불빛으로 채워진 도시에서는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막상 도시에 있는 학교에 입학했을 때 내게 당당함은 없었다. 가족과 떨어졌기에 외로웠고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자꾸만 확인하게 되었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것들이 나를 조종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 시절에 나는 좋은 친구를 사귀었고 여전히 그들과 잘 지내고 있으며 그 도시를 그리워한다. 과거의 나를 아는 곳은 바로 그곳뿐이니까. 오르한 파묵의 『내 마음의 낯섦』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메블루트처럼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면서 학교를 다닌 것도 아니고 급변하는 이스탄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그건 메블루트가 이스탄불을 사랑한 마음과 닮은 것인지도 모른다. 꿈을 키우고 어른으로 성장하고 누군가를 사랑했던 도시를 나도 사랑하고 있으니까.

 

 한 사람의 삶이 한 도시의 그것과 겹쳐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1969년 아버지를 따라 열두 살에 이스탄불에 온 메블루트는 2012년까지 그곳에서 살아간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어린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메블루트와 아버지를 중심으로 그의 사촌과 친구들, 그리고 아내 라이하와 그의 처가 식구들이 이스탄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이스탄불에 온 사람들. 메블루트의 이야기와 함께 대가족은 한 명씩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오로지 자신만이 자기 삶에 어떤 형태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젠가는 중요하고 대단한 일들을 할 것이며, 아버지와 모든 사람들이 메블루트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119쪽)

 

 메블루트가 이스탄불에서 처음 살게 된 곳은 외각의 무허가촌인 ‘게제콘두’로 빈민촌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자신의 집을 짓고 살고 가족 모두가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는 큰아버지는 성공한 삶이었다. 메블루트는 아버지를 도와 요구르트와 보자를 팔고 학교를 다녔다. 골목골목마다 통을 메고 다니면서 ‘보오자’를 외치며 말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장사를 하는데도 아버지와 메블루트의 가난은 계속되었다. 메블루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메블루트에게 대단한 일이 일어났다. 사촌 형의 결혼식장에서 아름다운 소녀에게 반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름다운 눈이었다. 매혹적인 눈, 그 눈에 빠져들어 메블루트는 이스탄불에서 사귄 친구 페르하트에게 부탁해 3년 동안 연애편지를 썼다. 급기야 그녀와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다. 그녀가 바로 라이하였고 운명의 장난인지 메블루트가 반한 아름다운 소녀의 언니였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다. 메블루트는 라이하를 진정으로 사랑했으니까. 메블루트는 더욱 성실하게 일했다.

 

 그 사이 이스탄불에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둣테페와 퀼테페 사이에 좌우익이 전쟁이 일어났고 150명이 살해된 마라쉬 학살이 발생했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정권이 대통령이 되었다. 메블루트는 정치적인 문제나 신을 모시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밥장사를 하고 보자를 팔며 두 딸과 아내 라이하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전부였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스탄불을 지켜보는 일은 나쁘지 않았다.

 

 도시에서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가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기쁘기도 했다. 메블루트는 도시가 자기보다 먼저 만들어졌고, 자신이 외부로부터 들어왔다고 보지 않았다. 자신이 그 안에 사는 동안 이스탄불이 만들어졌으며, 미래에는 더 아름답고 깨끗하고 현대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358~359쪽)

 

 그렇다고 마냥 행복했던 건 아니다.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도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 괴로워했다. 변해가는 이스탄불을 보면서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괜찮은 직장에 나가며 든든한 후원자를 가진 사촌들과 지내는 일도 버거웠다. 처제 사미하가 약혼자가 아닌 자신의 친구 페르하트와 도망쳤다는 사실도 그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인생은 그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주었다. 아내 라이하를 잃은 것이다. 두 딸과 메블루트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지만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이스탄불을 그리워하는지 확인하게 된다. 이스탄불로 돌아오고 싶었다. 메블루트의 삶, 분노, 행복, 라이하 그 모든 것이 이스탄불에 있었다.” (483쪽) 그러나 이스탄불로 돌아왔지만 예전만큼 이스탄불을 사랑하는지 자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전부였던 라이하가 없는 이스탄불. 점점 자신의 품을 떠나 이모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 자신을 떠나는 두 딸들. 더 이상 보자를 찾지 않는 사람들. 자신도 과거 아버지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메블루트는 사십삼 년 동안 이스탄불에 살고 있었다. 처음 삼십오 년은 매년 해를 더할수록 도시에 대한 예속감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었다. 최근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스탄불이 생소해졌다. (중략) 옛날 건물에 살던 사람들은 도시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채운 것만 같았다. 그들이 지은 건물들과 함께 사람들도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세워진 더 높고, 더 끔찍하고, 더 많은 콘크리트 건물에 새로운 사람들이 정착했다. 30층, 40층짜리 새로운 건물들을 볼 때마다 메블루트는 자신이 이 새로운 사람들 중 한 명이 아니라고 느꼈다.” (623~624쪽)

 

 무허가촌에서 시작된 이스탄불의 생활은 12층짜리 아파트의 삶으로 이동하였다. 누군가는 그들이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삶의 이면에는 수많은 고통이 쌓여 있었다. 거대한 도시의 주변에는 여전히 과거 ‘게제콘두’와 같은 삶이 존재했다. 메블루트는 그걸 모르지 않았고 ‘보자’를 파는 동안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자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변해버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메블루트는 사십 년 동안 알면서도 확연하게 인식하지 못한 사실을 지금 명백히 알게 되었다. 밤에 도시를 배회하는 것은 메블루트에게 자기 머릿속을 배회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벽, 광고, 그림자, 어둠 속에서 알아보지 못했던 이상하고 신비로운 것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자기 자신과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629쪽)

 

 메블루트의 생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스탄불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옛것을 전부 지우고 빌딩 숲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밤을 견디는 일은 외롭고도 쓸쓸하다. 어린 시절 먹었던 추억의 음식을 찾아 나서고 잊고 있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과거를 떠올리며 잘 살아왔는지 묻게 된다. 메블루트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무엇이 소중한가 생각한다. 어떻게 사랑하고 견디는지 말이다. 치열했던 삶,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온 메블루트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 가기에 오르한 파묵의 『내 마음의 낯섦』은 전혀 낯설지 않은 소설이다. 삶이라는 그 자체가 감동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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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8 2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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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9 0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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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9 0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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