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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영감의 도구
박지호 지음, 박찬욱 외 사진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백영옥)
어떤 사진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그것은 때로 사진을 찍은 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같을 때도 있고 다를 때도 있다. 필자와 독자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글처럼 말이다. 장황하게 글로 설명하기보다는 한 장의 사진으로 현재의 자신을 표현할 수도 있다. 글과 사진, 같은 듯 다르다. 다르면서도 같다. 나는 사진에 대해 잘 모른다. 카메라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사진작가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사진을 찍는 걸 아주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진들을 좋아한다.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사진, 그 안에 담긴 찰나의 감정을 흠모한다. 그러니 『라이카, 영감의 도구』에서 내가 기대했던 건 라이카에 대한 기대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들이 사용하는 라이카에 대해 궁금할 것이다. 그들이 왜 라이카를 쓰는지 그 인연에 대해서 말이다. 박찬욱 감독은 기능적인 측면을 칭찬했고 더 콰이엇은 따뜻한 느낌이 좋다는 부분이 더 눈에 들어올 것이다.

(박찬욱)
라이카를 좋아하는 이유요? 라이카는 색깔이 유난스럽거나 인위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유명한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제품이 아니잖아요. 그냥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방해되는 것들을 배제해 미니멀한데 그 어떤 스타 디자이너의 작품보다 우월하죠. (박찬욱, 31쪽)
라이카는 딱 색감이라고만 얘기할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이 참 좋은 것 같아요. 뭔가 살아 있는 듯한 묘한 생명감이 사진에서 풍겨 나오거든요. (더 콰이엇, 250쪽)
나는 카메라로 담고 싶은 건 무엇인가.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런 기대감이었다. 박찬욱, 하시시 박, 김종관, 백영옥, 김동영, 더 콰이엇, 유영규가 들려준 그 찰나의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분야에서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이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순간, 풍경, 그리고 그 이야기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음악을 만들고, 사진을 찍고 디자인을 하는 이들이 들려주는 사진에 대한 추억들. 그리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무엇을 보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지 말이다. 6명이 자신의 소유한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가운데 나는 유독 김종관 감독의 시선이 닿은 사진이 좋았다. 빛, 그림자, 사람들, 일상의 풍경들이 담긴 사진들에 자꾸만 눈이 멈추었다. 전혀 모르는 그에 대해 어떤 이미지가 생겼다고 할까. 사진이란 그런 것이구나 생각한다.

(김종관)
어쨌든 카메라 자체도 레이어 인 거잖아요? 제 눈과 피사체 사이의 레이어.
사진이란 나에게 무엇일까, 사실 대답할 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요즘 드는 생각은 그냥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수호신 같은 느낌이에요. (하시시 박, 81쪽)
어쨌든 사진은 어떤 시공간이든 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넣은 거잖아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개성이 있어요. 다른 체계를 갖고 있는 거죠. (김종관, 121쪽)
수많은 풍경이 다 사진으로 기록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순간, 간직하고 싶은 표정을 사진으로 남긴다. 단 한 장의 사진이 소설로 태어나기도 하고 영화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그 과정에 라이카가 참여하고 그 작업을 라이카가 동행한다면 맞을까. 라이카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사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찍은 사물과 풍경,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린다. 사진으로만 담을 수 있는 것들, 사진으로 추억할 수 있는 그리움. 사진으로만 전달할 수 있는 어떤 힘을 만난 것 같다. 그것은 일상을 기록하고 순간을 간직하며 나를 표현하는 동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