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정말 결실의 계절인가 보다. 아니, 열매의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수북한 밤을 보며 든 생각이다. 무언가를 획득하는 일은 성취감이 크다. 작은 노동의 수고로 비어있던 자루가 차오르는 건 즐거운 기쁨일 것이다. 그 기쁨의 주체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저 그것들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밤의 상태는 살펴보지 않고 씻어서 냄비에 삶았다. 지난번 먹은 밤보다 맛이 없었다. 모든 밤이 맛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룻밤이 지나고 밤이 들어있던 자루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알맹이들이 가득하다. 그것은 벌레가 밥을 먹은 흔적이었다. 온전한 밤을 고르는 일이 시작되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벌레가 먹은 밤을 고르는 건 쉬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고른다고 고른 밤을 씻어 물기를 빼고 얼마 후 다시 작은 알맹이가 나타났다. 도대체 벌레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떻게 이 단단한 껍질을 뚫고 밤을 먹는 것일까. 똑같이 생긴 밤을 바라보면서 겉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게 밤이구나 생각했다. 찐 밤을 갈라 보고서야 썩거나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얼마 안 되는 밤의 내면을 마주한다. 누군가의 내면을 아는 일도 그렇겠지. 겉으로는 그의 내부를 알 수 없고. 몇 번의 만남과 대화로 안다고 착각하기도 하니까. 그럼 밤 껍질은 위장일까. 아니 내부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일지도 모른다. 쉽게 웃으면서도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할아버지 추도 예배를 드린 어제, 홀로 참석하신 작은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난봄 입원과 시술, 그리고 계속되는 약 복용으로 부은 얼굴로 등장하셨다.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통증은 없고 약 때문에 붓는 얼굴 때문에 속상하시다고만 하셨다. 몸이 보내는 신호였지만 부은 얼굴이 작은아버지의 상태를 다 알려주는 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외부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내부를.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그의 소설에 대한 글을 많이 접한다. 내게도 두 권의 책이 있다. 읽지 않은 채 구매만 한 책. 조만간 읽으면 좋으련만. 장담은 어렵다.  그럼에도 소장하지 않은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구매해야 하나, 혼자 생각한다. 충동구매로 이어지면 안 되는데. 관심이 가는 책은 첫 소설과 첫 시집. 장수진의 『사랑은 우르르 꿀꿀』, 박사랑의 『스크류바』.

 

 

 

 

 

 

 

 

 

 

 

 도망치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가을이다. 고개를 들어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을과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진다. 떠나는 가을을 붙잡을 수 없겠지만 가을과 행복한 이별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