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의 진실
장 필리프 투생 지음, 박명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은 저마다의 고유한 가치가 있다. 어느 하나 같은 방식의 사랑이 없고 어느 하나 같은 형태의 사랑이 없다.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똑같이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도 있을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사랑은 그렇다. 너무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사랑이 있고 사랑하기에 사랑을 말하지 않는 사랑도 있다. 이처럼 다채롭게 성장하는 유기체와 같은 사랑, 자신의 삶에 자유로운(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마리’의 사랑은 어떤가, 그런 마리를 사랑하는 ‘나’의 사랑은 어떤가.

 

 ‘마리는 지나칠 정도로 열린 창문과 열린 서랍, 열린 트렁크, 무질서, 혼돈, 아수라장, 회오리바람, 움직이는 공기 그리고 돌풍을 좋아했다.’ (13~14쪽)

 

 장 필리프 투생의 『벌거벗은 여인』에 이어 만난 『마리의 진실』속 그들의 사랑은 연약하고 위태로웠다. 무엇 하나 두려울 것 없는 이기적인 마리의 사랑은 유리 같았다. 마리와 ‘나’의 관계는 여전히 선명하지 않다. 어떻게 만나 사랑했는 헤어진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더 끌리고 그들의 사랑이 궁금하다. 마리를 향한 ‘나’의 사랑을 말이다. 소설에서 ‘나’는 끊임없이 마리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헤어진 연인을 향한 미련이 아니라, 지극한 사랑으로 보인다. 이상하게도 그렇다. 같은 공간에서 눈을 뜨고 잠을 자고 사랑을 했지만 ‘나’는 마리를 떠나 다른 공간에 있다. 운명처럼 마리(같은 이름의 마리)와 침대에 함께 있던 새벽, 마리의 연락을 받는다. 자기에게 빨리 와 달라고,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거절할 수 없다. 마리의 부탁이니까. ‘나’의 마리이므로.

 

 같은 시각 마리의 공간에서 마리와 함께 있던 남자 장 크리스토프 드 G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마리는 ‘나’를 찾은 것이다. ‘나’와 나눴던 공간에 다른 이가 있었던 것. 그는 누구일까. 그는 왜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 그러나 ‘나’는 마리에게 아무것도 물을 수 없다. 그것은 ‘나’가 마리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비 내리는 밤 마리가 원하는 대로 가구를 옮길 뿐이다.


 ‘우리는 복도에서 동작을 멈추고 가구를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빛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우린 서로를 이해했고, 서로에게 이해되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랬다. 어쩌면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부정확한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보다 더 정확한 말도 없을 것이다.’ (54쪽)


 소설은 이제 마리와  장 크리스토프 드 G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어떤 사람이며 두 사람의 만남과 과정을 자세히 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나’와 마리가 아닌 그와 마리에 관한 것이라니.  그러나‘나’는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벌어진 마리와 그의 일을 들려준다. ‘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리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장 필리프 투생은 이렇게 독자를 소설 속으로 유인한다.


 ‘나는 마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더이상 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은 더이상 내가 아니었다. 저 남자의 존재가 보여주는 것은 내 부재의 이미지였다. 나는 눈앞에 내 부재를 나타내는 강력한 이미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며칠 전부터 내가 마리의 삶에서 사라졌으며, 내가 없이도 그녀는 계속 살아간다는 것을, 그녀는 나의 부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갑자기 시각적으로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그녀를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만큼 더 강렬하게.’ (142~143쪽)

 

 『벌거벗은 여인』과 『마리의 진실』속 엘바 섬은 마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애도의 공간이자 치유의 공간이었다.  장 크리스토프 드 G가 죽음 후 마리와 ‘나’는 엘바섬의 저택으로 향한다. 마리와 ‘나’는 동행할 뿐 관계가 회복된 건 아니다. 적어도 마리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마리의 분노와 슬픔을 다 아는 나였으므로. 마리를 향한 ‘나’사랑은 그러했다. 마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나’의 곁에 있든 떠나든. 그녀의 진실을 아는 이는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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