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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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작가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건 독자인 내가 문학의 시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80~90년대생 작가들의 소설을 읽노라면 더욱 강하게 느낀다. 하나의 현상에 대한 다른 시선을 인정하면서도 온전히 이해하며 흡수한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난 소설 중에서도 점점 더 끌리는 작가가 있는 반면 마침표를 찍는 작가도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수장작 임현의 「고두」는 읽으면 읽을수록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윤리적인 삶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윤리교사가 털어놓은 제자 연주와의 사건. 결국 윤리교사가 자신을 변론하는 이야기라고 할까. 그러니까 윤리교사가 뭐라고 하는지 끝까지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중적인 그의 태도는 비루하면서도 처참했다. 그것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으려 몸부림치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사과를 하는 듯 머리를 조아리고 있지만 사과하지 않는 가식적인 행동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담 없이 읽었지만 불편한 부담을 남긴 소설이다.

 

 얘야, 내 말 좀 들어보렴. 인간들이란 게 말이다, 원래 다들 이기적이거든. 태생적으로 그래. 처음부터 그렇게 생겨먹은 거란다. 그게 나라고 뭐 달랐겠니. 「고두」, 36쪽


 강화길의 「호수 - 다른 사람」은 소설집 『괜찮은 사람』에서 이미 만났다. 사람 시리즈라 할 수 있는 소설집에서 등장하는 인물처럼 강화길의 인물은 약간 모호하면서 답답한 면이 있다. 그것은 단점이면서도 장점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질문을 던지니까.「호수 - 다른 사람」은 서른두 살 민영과 진영의 이야기다. 친한 친구 사이였던 둘은 종종 아파트 근처 호수를 산책했다.  어느 날 호숫가에서 쓰러진 민영은 생사가 불투명하고 진영은 민영의 남자친구에게 집요함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민영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호수에 뭔가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진영에게 함께 그곳에 가자고 부탁한다.

 

 나는 그와 이야기할 때면 몸의 어딘가에 난 깊고 붉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쓰리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묵직하게 몸을 짓누르는 느낌. 하지만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는, 나도 모르게 몸에 박힌 상처를 발견하는 기분. 그래서였다. 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털어놓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호수 - 다른 사람」, (180쪽)


 사고가 나기 전 민영의 몸에 상처와 민영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생각하면 범인은 그일지도 모른다. 아마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은 끝날 때까지 모호함으로 일관한다. 여성 혐오나, 데이트 폭력에 대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곳곳에 내재한 불안과 공포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강화길이 그려내는 사람을, 계속 읽고 싶은 이유다.


 이미 다정하면서도 담담한 위로로 잘 알려진 최은미의 소설은 여전했다. 레즈비언의 사랑을 다룬 「그 여름」에서 이경과 수이는 마치 「쇼코의 미소」에서 쇼코와 나와의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경과 수이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다. 소설은 오롯이 이경과 수이의 세계만 고수한다. 동성애를 포함한 전체 성소수자로 확대가 아닌 오직 이경과 수이만의 감정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껴앉을 수 있는 위로할 힘이 전해진다. 하여, 단단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최은영의 소설의 이미지로 고착될 수 있다.  


 수이와의 연애는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수이는 애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그 여름」 (252~253쪽)


 처음 만나는 천희란의 소설은 편안했다. 효주와 선생님이 서로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라는 형식으로 성소수자의 삶을 이야기하는 접근이 편안했다는 것이다. 한 사람만을 위한 글, 편지가 주는 특별함이라고 할까.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선생님께 그 상황을 듣고자 하는 효주의 편지는 간절함이 묻어 있다. 우연하게 사건을 목격하고 결국 효주의 후견인 된 선생님은 객관적인 사실을 전하려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편지에서 선생님은 자신이 사랑한 사람이 여자였다고 고백할 때 감춰진 진실은 드러난다. 그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딸을 인정해주는 아버지가 훗날 효주를 대하는 부분은 무척 감동적이다. 식물을 기르는 과정에서 비유적으로 정성스럽게 들려주는 말, 그것은 다양성과 변화에 대한 존중이었다. 어쩌면 효주는 이미 자신의 어머니와 선생님의 사랑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존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을, 자신의 환경과 주고받는 영향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절대로 홀로 존재할 수 없어서,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하면, 그 변화가 세상의 다른 것들을 바꾸기도 한다고 하셨어요. 「다섯 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297쪽,)


 누군가 언급했듯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를 포함 현재 한국 문학은 여성 작가의 활동이 대단하다. 그동안 소설에서 일부만 다루었던 여성의 삶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변화와 진화의 힘으로 전복시키고 일으켜 세우는 문학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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