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잘 참는 아이였다. 기다리는 일도 잘 했다. 그건 아주 나쁜 습관이었다. 그런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참고 기다리는 동안 온간 말들이 켜켜이 쌓였다가 사라졌다.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어서 그랬던 적도 있었지만 기다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늦은 이유를 따지고 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통증을 참고 말았다. 미련하고도 미련하게.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도 참는 편에 속한다. 특별히 몸 어딘가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니다. 이상이 생긴 건 작은언니다. 목 디스크가 심해져서(안타깝게도 심해진 상태에서 병원에 찾았다) 입원 치료를 앞두고 있다. 서울에 있는 병원이다. 이럴 땐 서울에 살고 싶다.

 

 작은언니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언니를 바라보면서 그 지경까지 몰랐냐고 크게 화를 내지 못했다. 화를 낸다고 해서 언니의 불안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벌어진 상황,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아주 잘 안다. 청소년인 조카에게 엄마의 상황을 전달했고 언니에게 생각을 많이 하지 말라고만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별 의미가 없을뿐더러 내일을 걱정한다고 오늘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분명하면서도 차분하게 말했다. 병가를 낼 수 있는 직장(유급이면 더 좋겠지만)이라 다행이라고, 기간이 길지 않아 다행이라고, 수술이 아닌 다른 선택으로 치료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그리고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했다.

 

 당연히 가장 속상한 건 언니다. 누구도 그 아픔을 대신할 수 없다. 누군가는 목 디스크가 별거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언니에겐 대단한 것이다.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 안다고 믿는 것은 다르다.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퍼즐로 만들어지니까. 우연일까, 나는 소노 아야코의 『약간의 거리를 둔다』를 읽었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어쩌면 이 책은 내가 아닌 언니에게 더 필요한 책인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한 태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들려준다. 성급하게 말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온전히 좋은 책에 속한다고 말하고 싶다. 진부한 인생의 조언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는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인생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인생은 좋았고, 때론 나빴을 뿐이다. (74쪽, 「인생은 좋았고, 때로 나빴을 뿐이다」, 중에서)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 인생이 그러하지 않을까. 너무 낙관적인 게 아니냐고 말한다면 비관적인 것보다 훨씬 나은 거 아니냐고 답하겠다. 당신은 조르바처럼 살고 싶은 욕망이 없느냐고. 어쩄든 소노 아야코의 글은 힘이 세다.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스며들겠지만 스며들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둠 없이는 빛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인생이라고 다를 리 없다. 행복은 여간해서는 그 실태를 알아차릴 수 없지만 불행을 배우는 순간, 불행과 다른 행복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므로 불행은 생각만큼 손해는 아니다. 행복에 대한 갈망은 오직 불행한 가운데 키워지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운명을 똑바로 응시하지 않는 한, 희망의 본질에서 빛나고 있는 삶의  비밀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다. (62쪽, 「불행한 사람만이 희망을 소유한다」, 전문)

 

 속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를 만날 때마다 스프링을 생각한다. 외부의 힘에 변형된 물체가 원래의 모양으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말이다. 아픈 감정, 상처가 아물고 본연의 마음을 갖는 힘을 생각한다. 언니는 목 디스크라는 외부의 힘에 의해 변형됐고 입원과 퇴원 후, 그리고 회복을 위한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언니를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언니의 몸과 마음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무조건 다가갈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은 거리를 두면 아름답다는 말처럼 말이다. 언니와 나의 거리도 그렇다. 가족과 친구, 연인, 그들 사이에 거리가 필요하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 경우엔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세월과 더불어 그에게 품었던 나쁜 생각들, 감정들이 소멸되고 오히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궁금함이 밀려온다. (121쪽, 「떨어져 있을 때 상처받지 않는다」, 전문)

 

 『약간의 거리를 둔다』와 닮은 듯한 시집도 있다. 정호승의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를 함께 읽으면 더 좋겠다.  희망을 거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는 절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은 절망이 있기 때문에 희망이다

희망만 있는 희망은 희망이 없다

희망은 희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보다

절망의 손을 먼저 잡는 것이 중요하다


희망에는 절망이 있다

나는 희망의 절망을 먼저 원한다

희망의 절망이 절망이 될 때보다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전문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넘어져라

결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지 마라

굳이 뒤돌아보지 말고

넘어지더라도

그 누군가의 가슴에는 넘어지지 마라

오로지 자기의 슬픔 가슴에 넘어져라

하늘이 보이면 하늘을 보고

구름이 보이면 구름의 길을 따라 흘러가라

땅에 손을 짚으면 땅이 되고

물에 팔을 짚으면 그대로 물이 될 때까지

넘어지는 것이 일어서는 것이 될 때까지

일어서기 위하여 다시 넘어지게 될 때까지

누구 손을 내밀어도 선뜻 잡지 말고

아침이슬에 빛나는

풀잎의 긴 손을 잡아라 「넘어지는 법」, 전문


 

 우리가 사는 시대는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만 남은 시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인의 시처럼 절망이 있기에 희망이 존재하는 것. 저마다의 절망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꽃은 얼마나 강하고 단단할까. 언니는 잠시 넘어졌다. 언니에게로 말이다. 이제 일어설 것이다. 일어서기 위해 넘어지게 된 거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제법 병실에 익숙하지만 언니는 그렇지 않다. 병실에서 언니가 더 건강해지고 일과의 거리, 사람과의 거리, 그리고 자신과도 약간의 거리를 두기를 바란다. 약간 쉬기, 약간 혼자 있기, 약간 울기, 약간 웃기. 말이 되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약간이라는 말,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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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0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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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31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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