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 신은 혼자서 상처받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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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의 깊은 기대감은 그것만으로도 생명력이 있으며 우리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다는 걸 일깨워주지. 또 그런 바람은 희망을 자극하고.’ (85쪽)


  종교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믿음의 크기와 상관없이 말이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신실하거나 성실한 믿음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마음의 비밀을 보여줄 대상이 있어 좋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기도할 수 있는 기쁨이랄까. 성경을 열심히 읽거나 공부하는 건 힘들지만 그것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이브』를 읽는다. 오래전 읽은 『오두막』은 어려웠지만 이번 소설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더 깊게 확신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창세기를 읽은 듯한 느낌이라 할 수 있지만 누구라도 편견 없이 소설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이야기는 SF의 한 장면처럼 시작한다. 먼 미래 지구가 아닌 어느 공간, 섬의 해변에 시체가 담긴 컨테이너에서 살아남은 한 소녀. 소녀는 백 년째 섬에서 살고 있는‘수집하는 자’ 존의 보호를 받는다. 존은 마더 이브로부터 아이가 태어날 것이며 그 아이는 ‘태초의 증인’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고 그 아이가 소녀 릴리임을 직감한다. 살아 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체는 망가지고 겨우 숨을 쉴 정도다. 소녀를 살리기 위해 모든 기계가 동원되고 치유하는 자와 수호신이 곁에 머문다. 과연, 릴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으며 존과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치유하는 자는 누구일까.


  소설은 릴리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안식처인 섬, 지우고 싶은 어린 시절과 고통으로 이어진 지구에서의 삶, 하나님이 우주와 인간을 만드신 에덴동산, 세 개의 공간을 오가며 진행된다. 릴리는 마약중독자인 엄마에게 딸이 아닌 약을 사기 위한 도구로 버려졌다. 매춘의 길로 들어선 릴리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런 릴리가 어떻게 최초의 증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릴리는 환상(무의식) 속에서 마더 이브와 운명적 만남을 갖고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목격하는 태초의 증인이 된 것이다. 아담과 하나님의 관계, 그리고 사악한 뱀의 유혹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까지.


 존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조금씩 회복하는 릴리가 태초의 증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세 명의 학자 제럴드, 아니타, 사이먼이 방문한다. 그러나 릴리는 여전히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귀한 존재이며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릴리는 사이먼이 준 거울을 통해 추악한 모습을 확인하고 절망하고 만다. 그런 릴리를 사이먼은 릴리스라 부르며 태초의 증인이니 아담에게 배신당한 이브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면 이브는 에덴동산에 영원히 남을 수 있고 인류의 역사는 바뀔 거라며 유혹의 말을 건넨다. 그러니까 사이먼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신뢰를 망치는 뱀과 같은 존재였다.


  신뢰란 일생에 단 한 번 내리는 선택이 아니고, 매순간 강물이 흐르듯 선택하는 거야. 우리를 둘러싼 선물에 감사하고, 또 그 선물을 보내고, 혹여 한 번 잃더라도 어느 것도 잊히지 않았다는 걸 신뢰하는 거야.” (409~410쪽)


  소설 속 릴리처럼 우리는 수많은 상처를 받고 절망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흔들린다. 돌아서는 건 언제나 릴리와 같은 우리였다. 릴리의 아픔과 상처가 회복될 수 있었던 건 존과 치유하는 자, 수호자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성경을 기초로 하여 해석하며 읽을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슬픔,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회복의 힘과 위로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니까.


  “슬픔은 참 기이한 거야. 기쁨과 똑같이 갑작스레 찾아오거든. 옆으로 툭 하고 말이야. 그건 그냥 우리 삶의 리듬이고 충분히 인간적인 일이야.”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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