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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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을 만큼 힘들다고 말한다. 죽을 만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습관처럼 내뱉는다. 내게 주어진 삶이 가장 힘드니까 남들이 어떻게 살든 관망할 여유도 없다. 그게 산다는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새로운 삶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령 헛된 꿈이라도 말이다. 돌아보면 그곳의 모든 흔적은 내가 만든 것인데 왜 그렇게 살았나, 후회가 밀려온다. 김이설의 소설에는 후회라기보다는 한탄에 가까운 외침이 있다. 아니, 그것은 비명일지도 모른다. 더 비참해진 삶, 더 잔혹해진 사람들, 소설의 인물들은 지독한 세상을 닮아가듯 비루한 생을 이어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다. 어깨를 짓누르는 절망에 지지 않고 말이다. 그게 삶이니까.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슬픔을 대신 덜어줄 수 없다. 대신 앓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듯이, 온전히 자기 혼자 버텨내야 했다. (「폭염」, 89쪽)

 

 김이설의 소설은 불편하고 힘들다. 폭행이나 폭력에 대한 묘사의 등장 때문이 아니다. 소설이라는 세계의 끝에 현실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해자에게 대들지 못하고 자라 아버지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하는 「미끼」의 아들이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교사 아버지의 교묘한 폭언과 자신의 아들의 교육을 위해 재혼한 새어머니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는 「부고」속 딸에게 작은 기쁨이나 바람은 존재할 수 없었다. 윤리나 도덕이 배제된 게 당연한다. 그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 남편 실직과 빚 때문에 모텔 청소를 하며 버티는 「흉몽」의 아내와 남편과의 불행했던 결혼생활과 이혼 사실을 비밀로 간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비밀들」 의 ‘나’의 부도덕한 행동을 탓할 수 없다. 판단도 그들의 몫이다. 비난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위로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런 삶이 타인의 그것이라 우리는 크게 안도하고 쉽게 잊는다.

 

『나쁜 피』를 시작으로 김이설이 직시하는 건 불행한 삶이다. 누구나 알고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애써 살피지 않는 삶 말이다. 이 소설집에서 주목할 점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걸 말하고자 한다는 거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열심히 일하고 정당한 대우를 주장한 파업의 대가로 회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남편의 자살 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와 어린 자녀를 둔 여자의 슬픈 독백 「아름다운 것들」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고 답답했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거대한 행복의 궁전으로 들어가기를 바란 게 아닌데.

 

 그런가 하면 아내 정미의 자살에 대해 감당할 수 없었던 남편 윤철의 조금씩 안정을 찾고 오히려 편안해하는 「복기」와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집을 장만했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더 불안한 일상을 이어가는 「빈집」은 인간의 욕망과 심연을 투영하는 거울과 같다. 윤철은 정미가 죽고 나자 결혼 전 자신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된 정미에 대한 자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행복으로 꾸며진 집의 일부가 될 수 없었던 수정의 슬픔이 멈추기를 바라는 건 나만의 바람일까.

 

 ‘윤철은 정미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것이 윤철이 꿈꿨던 이상적인 남편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취향의 차이, 입장의 차이, 결국 타인이기 때문에 절대 합일될 수 없는 관계의 한계일 뿐이라도 여겼다.’ (「복기」, 257쪽)

 

 ‘수정은 그 순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행복해서가 아니라,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낀다면 바로 이 순간에 느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햇볕이 꽉 찬 실내는 따뜻했다. 집안은 깨끗했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했다.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 (「빈집」, 317쪽)

 

 모두에게 완벽한 삶은 어디에도 없다. 저마다 자신의 기준에 도달하려 안감힘을 쓰는 거다. 거기에 작은 격려와 응원이 더해진다면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니 절망에 지지 않는다는 건 그것과의 단절과는 다른 말이어야 한다. 예측은커녕 상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벌어지는 삶에서 절망을 끊어낼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우선은 절망에 지지 않고 대등해져야 한다. 설령 절망과 나란히 걷더라도 말이다. 걷고 걷다 보면 그 끝에 절망이 아닌 그 무언가(희망이면 좋을)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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