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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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이고 딸이고 엄마이다. 돌아가신 엄마는 딸이라 차별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대놓고 차별을 하셨다. 귀하고 좋은 건 모두 오빠와 남동생에게 주어진 몫이었다. 대학 진학에 있어서도 할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강력하게 만류하셨다. 물론 고집이 센 나는 내 의지대로 밀고 나갔다. 엄마는 여유로운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밥을 사 먹고 나서야 엄마가 말하지 못한 진심을 짐작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성차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차별 대우를 받지 않았던 건 아닌데도 그렇다. 관심이 많지 않았고 직장에서 부당대우를 받은 기억은 없었다. 같이 어울려 다녔던 여자 동료의 덕택인지도 모른다. 잊고 있던 시절이다. 조남주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시절이 떠오르고 여자로 산다는 게 무엇인가 생각한다.

 

 ‘김지영씨의 어머니뿐 아니라 이미 아이를 낳아 키워 본 친척들, 선배들, 친구들 중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TV나 영화에는 예쁘고 귀여운 아이들만 나왔고, 어머니는 아름답다고 위대하다고만 했다.’ (150쪽)​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급속히 변해도 일과 육아로 지친 일상은 변함이 없다. 그저 남들이 다 하는 일이라고, 엄마니까 희생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모성애가 있지 않냐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이를 얻었으니 감내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육아휴직을 하는 아빠가 늘고 있는 현실이지만 아빠는 여전히 육아의 주체가 아니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도 여자들의 승진은 남자들에 비해 느리다. 소설 속 김지영은 그 모든 것을 경험한 여자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고 맞벌이를 하다 아이가 생겼고 출산휴가와 양육에 대해 고민하다 퇴사를 했다. 엄마로 살아가면서 자존감은 떨어지고 김지영은 종종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친정 엄마가 되거나 대학 선배가 되어 김지영을 대변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시원스레 하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의 입을 빌려 말해야 하는 소설 속 상황이 현실과 너무 닮아서 가슴이 아프다가 화가 났다.

 

 ‘남자가 1번이고, 남자가 시작이고, 남자가 먼저인 것이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남자아이들이 먼저 줄을 서고, 먼저 이동하고, 먼저 발표하고, 먼저 숙제 검사를 받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조금은 지루해하면서, 가끔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전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주민등록번호가 남자는 1로 시작하고 여자는 2로 시작하는 것을 그냥 그런 줄로만 알고 살 듯이.’ (46쪽)

 

 소설은 엄마이자 여자로 살아가는 수많은 김지영들의 현재 삶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그러니까 1%도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보고서라고 할까. 딸 둘을 낳고 셋째가 딸이라서 유산을 선택한 어머니 세대의 고통, 남자아이가 우선이었던 학교생활, 이중적 시선으로 여자 후배를 보던 남자 선배, 아무렇지 않게 언어폭력을 행하는 남자 동료와 상사, 지친 육아에 잠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전업주부에게 ‘맘충이’라 부르는 직장인. 사회 곳곳에서 쏟아지는 차별과 비난을 받으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기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불쑥불쑥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만 같다. 존중받아 마땅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인 여자의 삶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왜 우리는 이런 소설을 읽고 분노하고 공감하며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작가의 치밀하고 탄탄한 취재가 오히려 씁쓸하다. 이 땅에서 태어난 살고 있는 여자라면 한 번쯤 경험한 에피소드라서 우울하다.

 

 문득,‘여자라서 행복하다’던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여자사람으로 온전하게 행복한 이는 얼마나 될까. 세대가 다르지만 결국엔 김지영의 삶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네 현실.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결혼과 육아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들만을 위한 소설이 아니라는 거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함께 읽고 느끼고 공감해야 할 중요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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