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 되었다. 곧 첫눈이 내릴 것이다. 어제는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찍 일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한 달에 한 번, 내게는 의식처럼 행해지는 일이다. 차가운 바람이 자꾸만 내게로 달려들었다. 적군을 향한 맹렬함이 느껴졌다. 겨울이구나, 생각했다. 하나의 기도를 계속 드린 것 같다. 아니, 다른 기도도 있었다. 무언가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만큼은 이전과는 다른 순수한 인간처럼 여겨진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하늘은 밝은 잿빛이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하늘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사진을 찍어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따뜻한 무언가를 찾는 계절이다. 장갑, 워머, 덧신. 몸을 감추는 계절이다. 마음을 감추는 계절은 아니었으면. 11월은 분주하면서도 여유가 있다. 아직은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는 안도감이랄까. 그 시간에 무언가를 다 채울 수도 없고 무언가를 찾을 수도 없으면서 말이다. 곁에 둔 김상혁의 시집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에는 십일월에 대한 두 편 시가 수록되었다. 같은 듯 다른 십일월을 상상하게 된다.

 

 십일월에 내리는 눈에는 비가 섞여 있어 잠을 자고 나면 꿈의 차디찬 들판을 달리던 가슴에 식은땀이 흐른다네 오늘 우산도 없이 현관문을 두드리던 사람이 내일도 꼼짝없이 눈 속에 서서 떨어야 하는 식이지 누구나 화가 앞에서 발가벗을 용기를 가진 건 아니라네. (「십일월」 ​중에서)

 

 십일월은 내년을 기대하기에도 한 해를 돌아보기에도 좀 이르다. 자동차 정비를 핑계로 부모에게 꾼 돈으로 아이를 지우거나 그런 일을 겪고 내가 개종을 해도 지인들은, 십일월은 참 조용한 달이야, 하고 낮게 중얼거리고는 차를 따뜻하게 끓이기 시작할 만큼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애인과 모텔 전기장판 위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아버지를 잃게 된 어머니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십일월 우기에 태어났다는 신에 대해 생각하면서. ​(「십일월」전문)

 

 11월의 빛을 생각하며 호퍼의 그림을 보기도 한다. 그림 속 여인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고 그곳에서 누구를 기다리는냐고. 이런 놀이 아닌 놀이는 11월과 호퍼의 그림이 있기에 가능하다.  

 

 어제를 보냈고 곧 오늘도 보내겠지. 11월의 날들에 나란하게 걷을 수 있는 이가 있기를 바란다. 손을 맞잡고 발을 맞추며 걷는 다정한 사람이길 바란다. 귀여운 강아지 혹은 도도한 고양이여도 좋겠다.​ 곧게 뻗은 은행나무라도 괜찮다. 밤이 되면 전부를 불태워 빛이 되는 가로등이어도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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