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왕국의 성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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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이 즐거운 건 현실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상황을 피해 다른 곳으로 마음을 보내 잠시나마 편안해질 수 있는 일. 가상공간으로의 초대인 게임에 빠져드는 이유도 같다.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다른 나로 살 수 있다는 착각. 그런데 정말 그런 세계가 있다면 단 번에 거부할 수 있을까? 우연히 마주한 한 장의 그림이 다른 세계의 통로가 된다면 어떨까?

 

 고교 입시의 부담에서 벗어난 신은 심부름으로 은행에 갔다가 그림 하나를 주워 집으로 가져오고 만다. 돌려줄 기회를 놓친 신은 그림 속 아름답고 신비로운 고성에 빠져들고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손으로 그림을 만지니 그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림 속 고성에 한 소녀가 갇혀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의 분신을 그려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안 신은 정확하게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찾는다. 그림을 잘 그리는 동급생 시로타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설명한다.

 

 완벽하게 그림을 그린 시로타 덕분에 둘은 함께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낯선 남자를 만난다. 그러니까 그림의 존재를 아는 다른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그림 밖으로 나온 신과 시로타는 그 남자가 만화를 그리는 파쿠 아저씨와 소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과연 그림 속 성에 사는 소녀는 누구일까? 그림을 통해 시간의 이동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세 사람은 소녀의 단서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10년 전 사라진 소녀였다는 걸 확인한다. 현실에서 사라진 소녀는 방임된 상태였다. 미혼모 엄마와 새아빠 사이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소녀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세 사람은 소녀가 스스로 그림 속 성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 의해 갇힌 게 아니라 소녀의 선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은 좀 혼란스럽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통하는 그림, 그곳에는 현실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설정, 그리고 그 세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좀 난해하다고 할까.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사는 신은 그림 속 세계가 아닌 현재를 선택하지만 아버지의 재혼으로 힘든 생활을 하는 시로타는 그림 속 세계를 원한다. 돌아가신 어머님께 성공한 만화가가 되지 못했기에 불효자라 여기는 파쿠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과거의 세계로 말이다. 그러니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과감히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다는 말이다.

 

 “세계는 많이 있어. 수많은 세계가, 수많은 사상의 선택지 앞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 다만 우리는 그 전부를 인식할 수 없어. 기본적으로 자신이 있는 세계에 대해서 밖에 알지 못해.” (322쪽)

 

 단순한 재미를 주는 판타지가 아닌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말하는 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다. 소설에 등장하는 신과 시토라는 고교 입시를 선택했고 파쿠 아저씨는 앞으로 자신의 만화를 그릴지 선택해야 한다.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없으니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진부한 메시지를 전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묘한 분위기 설정과 그림을 통한 순간 이동은 대단한 흡입력이라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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