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바다를 꿈꾸는 건 일상이다. 바다를 떠올리기만 해도 충만해지는 듯하다. 늘 서성이던 그곳에 터를 잡고 살고 싶다는 바람을 키운다. 바다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 부서지는 파도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가진 게 없는 생이 부끄럽지도 않다. 해가 지는 풍경을 마주하며 나를 돌아보는 순간, 뜨거운 황홀감에 빠져든다. 예전과 다르게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는 나는 행복하다. 그러니 자연의 비밀을 아는 사람 김영갑의 생은 행복했을 것이다.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글이 아닌 사진으로 익숙한 책이다. 내게는 그랬다. 사진을 통해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보았고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를 들으려 했다. 사진으로 들어가 안갯속을 걷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180쪽)

 사진과 함께 글을 읽기는 처음이다. 사진을 업으로 알고 혼자 살다가 루게릭으로 투병하다 생을 마감했고 갤러리 ‘두모악’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제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꿈꾸었는지는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기와 다를 바 없는 글을 천천히 읽으면서 그가 찍은 제주의 풍경을 보니 이전과 다른 사진이 되었다. 자신의 전부를 걸만한 대상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것을 향해 정진하는 불꽃같은 삶에 후회는 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든 자신을 지키며 살고자 했던 생을 누군가는 고단하고 비루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행복하다 말한다. 같은 듯 다른 사진, 뭐라 말을 거드는 듯 귀를 기울이게 되는 사진, 복잡한 생각을 말끔하게 걷어내는 풍경,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시선을 빨아들인 사진은 아름답고 아름답다. 어렵고 힘겹게 찍은 사진을 나는 이렇게 쉽고 간편하게 봐도 괜찮은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섬이라는 공간에서 온몸으로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김영갑은 이방인이며, 경계인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얻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초를 겪고도 그곳에 머물고 싶었던 건 제주가 그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간첩신고를 받고 경찰서에 오가고 암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사람들에게 애원을 해야 했던 시간들, 모두가 사진을 찍고자 하는 그의 간절함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제주를 사랑했는지 글을 읽으면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연인을 바라보듯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뜨거운지 말이다.   

 장마철이면 안개 짙은 날 치자꽃 향기에 취해 마시는 커피 맛은 유별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 보름달을 보면서 마시는 차 맛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80쪽)

 

 마라도는 참으로 아름다워서 좋다. 섬 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어서 좋다. 십 분만 걸으면 동서남북 원하는 곳에 가 닿을 수 있다. 일출과 일몰은 보고 또 보아도 볼 때마다 새롭다. 사랑하는 연인처럼 늘 섬이 그리웠다. (152쪽)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 않고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은 천국이자 낙원이다. ​루게릭 진단을 받고 염원했던 갤러리를 오하며 남은 생을 그곳에서 평온하게 살았던 그가 남긴 풍경은 삶이었다. 누군가는 외롭고 고독한 예술가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그의 글과 사진을 통해 행복의 맛을 맛볼 수 있어 고맙다. 분주한 일상을 떠나 한적한 휴가지를 찾지만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에게 쉼과 평화를 전해준다.

 

 ‘하나에 몰입해 있는 동안은 오늘도 어제처럼 편안하다. 하루가 편안하도록 오늘도 하나에 몰입한다. 절망의 끝에서 한 발로 서 있는 나를 유혹하는 것은 오직 마음의 평화이다. 평화만이 나를 설레게 한다.’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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