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건 지독한 착각이며 오만이다.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해도 한계를 느낀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이의 생일에 선물을 고르다 나는 주저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문자를 했고 나는 의문이 아닌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미나토 나가에의 『리버스』는 그런 소설이었다.

 

 ‘후카세 가즈히사는 살인자다.’란 충격적인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후카세’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좋은 학벌을 지녔지만 작은 회사에 다닌다. 사무용품을 배달하고 수리한다. 고등학교까지 절친은 없었고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맛있는 커피가 아니라면 직장 동료나 세미나 친구들이 후카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에게 커피는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였고 위로였다. 그런 후카세가 살인자라니. 그는 가면을 쓴 잔혹한 사이코패스란 말인가?

 

 남자친구가 살인자라는 편지를 받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에 신고하거나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 것이다. ‘미호코’는 후자를 택한다. 후카세는 3년 전 세미나 동기들과 놀러 갔던 일과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나눈 친구가 사고로 죽은 일을 들려준다. 운이 나빴던 사고였지 살인은 아니었다. 미호코와는 단골 커피가게에서 만난 연인으로 발전했다. 후카세에게는 처음 사귄 여자친구였다. 그러나 미호코에게 날아온 편지로 인해 둘의 관계는 깨지고 만다.

 

 3년 전 여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심한 후카세에게는 네 명이 세미나 동기가 있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항상 당당한 ‘무라이’, 교사가 될 거라는 확신에 찬 ‘아사미’, 모임의 리더라 할 수 있는 만능 운동꾼 ‘다니하라’, 무슨 일이든 배려하는 넓은 마음을 지닌 ‘히로사와’. 후카세는 히로사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그를 진정한 친구로 여겼다. 모두가 즐겁게 떠난 여행에서 히로사와는 죽었고 나머지 네 명은 그날의 음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숨기는 사실이 있다는 게 곧 죄가 있다는 증거야.’ (124쪽)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된 아사미를 일적으로 만날 뿐 무라이와 아사미와는 연락을 끊고 지낸다. 그런데 나머지 세 명에게도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아사미는 자동차에 전단지로, 무라이는 아버지의 선거 사무실로, 다니하라는 선로 위에서 죽을 뻔했다. 누가 그런 일을 벌였을까, 히로사와의 부모님이 배후에 있는 건 아닐까. 후카세는 자신이 조사하겠다며 히로사와의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자신이 몰랐던 히로시와의 여러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안다고 믿었지만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좋아하는 음식과 먹지 못하는 음식조차 말이다. 그리고 밝혀지는 놀라운 진실.

 

   ‘기다란 선 위에 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84쪽)

 

 소설은 살인과 복수에 초점을 맞추는 듯 보였지만 관계와 내면에 대한 이야기다. 후카세가 히로시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묘한 감동을 불러온다. 고향에서 보내온 꿀을 커피에 타서 먹었던 시간을 추억하고 진실된 우정을 나눈 히로시와를 그리워하는 후카세. 커피를 마시며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이다. 마지막 반전의 한 문장마저 독하고 진한 커피의 맛으로 다가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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