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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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때때로 위장의 삶을 산다. 소소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고 계획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후자는 범죄에 가담했을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범죄가 아닌 경우 다양한 삶을 살아보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배우라면 그런 삶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은 존재한다. 우리는 그를 스파이라 부른다. 고급 정보를 빼내기 위해 신분을 위장하며 살아가는 삶은 긴장의 연속일 것이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삶은 행복할까? 

 

 대학 입학 이후 15년의 기억을 잃은 어느 스파이의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박주영의 『고요한 밤의 눈』은 절체절명의 위기와 긴박함보다는 삶에 대한 철학적 관조처럼 다가온다. 스파이를 키우고 주도하는 조직이 등장해 누군가를 조사하고 감시하지만 구체적인 사건 정황은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스파이는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는 착각을 불러온다.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사회적 지위를 갖춘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 혼자지만 아주 미세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중간의 점이 사라져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선이 어떤 의지로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65쪽)

 

 소설은 정신과 의사인 일란성 쌍둥이 언니의 실종으로 단서를 찾는 D와 15년 동안의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남자 X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X는 유일한 방문자인 Y를 만나 자신이 몰랐던 이야기를 듣고 D에게 상담을 받는다. 놀랍게도 Y는 스파이였고 X도 스파이였다. 자신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X는 Y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서로가 서로를 탐색하며 거짓 아닌 거짓으로 대한다. Y는 상사 B의 지시로 소설가 Z를 감시하지만 그 이유가 묻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소설에서 보여준 스파이의 존재는 세상이 원만하게 돌아가도록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그러니까 권력과 자본의 통제를 벗어나는 삶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안 누군가는 떠났고 누군가는 사라졌다. 이쯤에서 우리는 D의 언니도 스파이라 짐작할 수 있다. 자발적 실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설에서는 그것이 문학이라고 말한다. 소설가 B를 감시한 이유다.

 

 ‘혁명은 사람들의 기억과 핏속, 심장에 있다. 모든 사람의 피를 세탁할 수도 모든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도 모든 사람의 심장을 바꿀 수도 없다. 피는 흐르고 기억은 숨고 심장은 뛴다. 어디선가 여전히.’ (188쪽)

 

 기억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 소설은 예상했던 추리 스릴러가 아니라 사회적 소설이다. 때문에 누군가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안에서 우리의 현실을 발견한다. 진실이 거짓으로 바꾸는 여론, 나도 모르게 내 모든 정보를 누군가가 수집하고, ​정의와 양심을 묵인하는 사회 말이다. 독특한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커지는 불안과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우리가 사는 삶은 진짜인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 답답해진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불안하고 무엇 때문에 불편하지 묻게 만든다. 각자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작은 점이 되어야 한다고. 점이 모여 선이 된다는 걸 잊었냐고.

 

 ‘포기하지 않는다. 망각에 맞서기 위해 기억한다.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는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다시 쓰고 또 누군가는 다시 읽는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되고 있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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