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의 전설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는 내내 지루했던 책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이상한 일이다. 특별한 사건 없이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나열이 나중에 소중한 기록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과 제한된 공간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내는 날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생각날 줄 몰랐다. 데이비드 밴의 소설 『자살의 전설』이 그랬다. 아버지의 자살과 그에 대한 책임과 죄의식으로 생의 절반을 자전적 소설이라 제목처럼 암울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아버지와 보낸 시절이 짧았기에 그리움은 기억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살을 경험으로 체득한 아이의 삶이 올바르고 밝게 자랄 수는 없었다. 어두움이 빛을 가려 빛의 존재를 잊게 만든 경우다. 분명 거기 빛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섯 개 단편과 한 편이 중편소설에서 데이비드 밴은 아버지를 말한다. 아버지의 삶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들려준다. 두 번 이혼을 한 남자, 가족과 자식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지 않은 삶. 삶의 궤적이 모두 충동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운 삶. 그러나 아들을 결코 방치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와 헤어졌지만 호시탐탐 여자를 갈망하고 제멋대로 모든 걸 결정하고 금세 후회했지만 아닌 척하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는 몰랐다. 그래서 아들에게 사과할 줄 몰랐고 이해를 구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싸움에 불안하지 않을 아이가 있을까. 「어류학」의 로이도 그랬다. 그 자리를 피해 몰래 옆집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어항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에 빠져든다. 이혼 후 배를 장만한 아버지는 알래스카 바다에서 고기잡이로 성공을 꿈꾸지만 실패하고 결국 자살한다. 걷잡을 수 없는 결핍과 함께 성장하는 로이를 통해 데이비드 밴을 본다. 아버지와 재혼한 새엄마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소설 「로다」는  새로운 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기대는 곧 실망으로 이어진다. 로다의 부모는 서로를 증오한다. 로다는 마치 로이의 미래처럼 보인다. 불안과 분노가 전염된다고 할까.

 

 아버지와 로이의 감정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듯한 「수콴 섬」은 수콴 섬의 오두막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대책은커녕 계획도 없이 오두막을 산 아버지는 로이에게 함께 살자고 권한다. 로다와 이혼한 아버지를 향한 연민이었을까, 수콴 섬으로 향했지만 로이의 일상은 우울의 연속이다. 밤마다 울며, 벼랑에서 자살할 듯 불안하게 서 있는 아버지. 아버지가 건넨 총으로 로이는 자살하고 만다. 로이의 자살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데이비드 밴이 의도적으로 아버지가 아닌 로이의 자살을 선택한 것만 같다. 죽은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자신을 대신해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오열하지만 전처와 딸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전긍긍할 뿐. 도무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에게 삶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아들의 시체를 묻지도 못하고 육지와 닿을 방법을 고심하다 불을 내 구조된다. 가족과 세상은 아들의 자살을 믿을 수 없다. 아들을 죽인 범인으로 지목되지만 보석금으로 나오고 멕시코로 향하다 밀항을 도와준 선원에게 죽임을 당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계획한다고 했던가. 로이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물음표로만 남았다. 거대한 의문과 부재로 남은 아버지. 그럼 어머니는 어땠을까?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의 일상을 그렸다고 할 수 있는「선인의 전설」도 회색일 뿐이다. 다른 남자를 만나지만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누구도 로이를 보살피려 하지 않았다. 아이로 살아야 할 시기를 로이는 잃어버렸다.로이의 불안이 증폭되는 이유다.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고 자신을 견뎌야만 했다. 어쩌면 새로운 삶은 하나의 장면으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로이(데이비드 밴)에서 아버지의 자살이라는 운명은 숙명이 되었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글을 써야만 했다. 어떻게든 그것을 이해하든 그것에서 벗어나야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자살 후 아버지의 불륜 상대를 만나는 과정을 그린 「케치칸」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나 분노가 아닌 그리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상상의 이야기 「높고 푸르게」 는 더욱 아리게 다가온다.

 

 ‘기억이란 실제보다 아주아주 풍요롭다. 과거로의 회상은 기억 자체로부터 기억 하나를 덜어낼 뿐이다. 기억이 삶 또는 자아를 세우는 기반인 한, 귀향은 삶과 자아를 제거하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케치칸」, 278쪽)

 

 경험과 추억으로 채워진 과거는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그러나 지울 수 없는 과거는 삶을 갉아먹는다. 『자살의 전설』이 되고만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소설이라 부르지만 소설이라 할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아버지와 자신을 향한 데이비드 밴의 처절한 외침을 들을 수 있다. 그것을 그리움, 혹은 애도라 말할 자신이 내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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