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나이 - 완성된 삶을 위하여
로마노 과르디니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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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게 사는 것과 괜찮게 죽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제대로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삶은 어렵고 나이에 맞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쉬운 예로 옷을 하나 구매할 때도 나이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옷을 입어도 괜찮을까, 이런 신발을 신어도 괜찮을까. 어른답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가 맞겠다.

 

 지나온 나를 마주하는 순간은 두렵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인데도 과거의 잘못이나 어리석은 행동이 여전히 부끄럽기 때문이다.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는 모든 게 빨리 지나 과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후회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복잡한 생각이 우울로 넘어갈 위기에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로마노 과르디니의 『삶과 나이』를 만났다. ‘삶과 나이’라는 제목을 자꾸만 삶과 나로 읽는다. 책은 인생의 시기별로 나타나는 특징과 가치를 말한다. 태아,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노년기로 구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들려준다. 유년기에 대한 이런 글을 통해 우리는 존재 그 순간부터 독립된 자아를 꿈꾸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의존했던 부모에게서 벗어나 진정한 나와 마주하기를 바랐던 시간은 본능과 같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입장이 바뀌어 부모가 되면 여전히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소유의 개념으로 보니 갈등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성장 과정의 목표는 타인과 구별되는 고유한 자아를 정립하고, 자유와 책임을 지는 인격으로 서는 것, 그리하여 세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세계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아가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열립니다. 로서 를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3쪽)

 

 ‘청년은 사실이란 것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러한 것. 원칙에서 도출되지 않는 것, 그래서 원칙으로 제압하고 제거할 수도 없는 것. 원칙에 어긋나는데도 버젓이 존재하는 것, 그러기에 고려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고, 오랜 노력을 기울여야만 장악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실의 세계인 것입니다. 젊은이는 이제 무엇이라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끈기, 참을 줄 아는 힘입니다.’ (70~71쪽)

 

 청년에게 도전과 끈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단연 도전이 압도적일 것이다. 청년의 시간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은 도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의 끝에서 도전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게 끈기가 아닐까 확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나온 시절이 아닌 다가온 나이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철학자의 조언대로 살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느 시절의 나를 글로 만나니 엉망으로 살았구나 싶어 지난 나에게 미안하다.

 

 어쩌면 인간은 누구나 같은 시기를 거쳐 성장하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기마다 필수적으로 경험하는 감정과 관계를 어떻게 대처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부모와의 친밀감이 중요한 유년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확립하고 나만의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청년기, 자신이 한계를 경험하고 권태에 빠지는 성년기와 죽음에 대한 공포로 무기력한 노년기를 통해 하나의 생과 만난다. 부모, 형제, 친척, 그리고 친구의 부재가 늘어난다. 100세 인생이라고 하지만 누구에게나 남은 생이 똑같을 수 없기에 이런 글로 마음이 기운다.

 

 ‘하루가 끝났다, 일주일이 끝났다, 한 계절이 끝났다, 한 해가 끝났다. 또한 다음과 같은 의식도 더욱 뚜렷해집니다. 지금 하는 일을 어제도 했었다, 오늘 겪는 일은 일주일 전에도 겪었던 일이다. 이 모든 것이 그 사이에 흐르는 시간을 움푹 쪼그라들게 만듭니다. 삶은 점점 더 빠르게 미끄러져갑니다.’ (96~97쪽)

 

 ‘죽음은 의사가 위독하다는 진단을 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됩니다. 기력이 떨어지고, 삶의 반경이 좁아지고, 타인의 의존 정도가 커지는 것과 같은 쇠락의 과정이 삶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순간부터 이미 죽음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령의 시기에 어떤 가치형상이 있다면, 그것의 핵심은 죽음을 향해 올바르게 나아가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5쪽)

 

 같은 세대, 혹은 다른 세대와 점점 이해보다는 오해가 쌓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절된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후회한다.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와 더불어 타인의 그것을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어느 시기에 속했든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라면 『삶과 나이』란 멘토와 만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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