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는 더 이상 신선한 소재가 아니다. 더불어 기피 대상도 아닌 듯하다.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잘생기고 멋진(?) 좀비를 만나왔기 때문이다. 좀비는 한국소설에서는 익숙한 존재가 아니었다. 김중혁의 장편소설 『좀비들』을 읽었지만 그들은 공포의 대상이 아닌 그리운 존재였다. 여기 우리가 만났던 이전의 소설과는 다른 좀비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한차현의 『Z : 살아있는 시체들의 나라 』가 있다. 생존을 위해 인간을 먹고사는 좀비, 인간의 적으로 살아가는 좀비, 그런 좀비로 인해 돈을 벌고 영원한 생을 꿈꾸는 좀비 같은 인간, 인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의 이야기다. 한차현은 인간의 탐욕의 결과로 좀비를 탄생시키고 공간과 시간을 오가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 공간은 샤워실. 눈을 뜨니 지저분한 샤워실에 갇혔다. 목에는 개 목걸이처럼 강철 벨트가 있고 주변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누가 대체 이런 곳으로 납치했는지 알 수 없다. 곁에 있는 사람도 믿을 수 없다. 그래도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있는 여섯 뿐이다. 아니, 자세히 보니 한 명은 죽었다. 서로를 견제하며 살피는 중 좀비가 등장한다. 좀비로 인해 그들은 서로 힘을 합친다. 납치와 좀비 사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있을까. 최초의 좀비는 누구였을까.

 두 번째는 서울 도심의 넓고 화려한 파티장.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알몸으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로 한국에서 명예와 부을 자랑하는 상류 사회의 최고 VIP. 한국을 한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가면 무도회와는 다른 난잡하고 퇴폐적인 파티다. 그리고 그 가운데 누군가를 노리는 킬러들. 그들은 좀비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이제 좀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 의사 김건호(가네야마)의 아픈 딸 활란이 등장한다. 김건호는 딸의 치료를 위해 금기의 방법을 동원하고 활란은 좀비로 살아남는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암시하듯 좀비의 탄생 과정에 일본의 생체실험과 731 부대의 잔혹한 만행이 연결된다. 좀비에게 공격을 당한 이는 좀비가 되고 이 과정에서 김건호도 좀비가 되어 한국 근현대사 곳곳에 등장하여 현재의 거물로 존재한다. 여전히 40대 모습으로 말이다. 좀비 바이러스로 돈을 벌고 사람들을 납치하고 실험하며 도구로 사용한다. 그러니까 파티장에서 킬러가 노리는 인물은 바로 김건호.

​ 한차현은 좀비라는 소재를 빌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한국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한다. 가면 뒤에 숨겨진 실체가 그러하듯 추악한 민낯을 보여준다. 실존 인물의 등장과 역사적 사건의 교묘한 배치가 흥미롭다. 이런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색다른 재미가 아닐까 싶다. 납치된 사람들을 좀비로부터 구해내고 김건호와 상대하는 Z와 전문 킬러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은 좀 아쉬웠다. 좀비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정통 좀비 소설이 아닌 한국형 좀비 소설이라 말하면 어떨까.

 세상에 놀랄 일은 없다. 뭐든 터지고 나면, 그것이 어떠한 사건이건 어느 정도 필요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고 만다. 세상을 변화시킬 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 세상의 질서다. 그것이 이 나라의 정의다. (372~37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