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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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의 방식과 목적은 다양하다. 궁극적으로는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함이다. 소중한 것을 간직하기 위한 기록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누군가는 그림으로, 누군가는 글로 기록한다. 남겨진 기록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고 확인하며 상상한다. 그것은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솔직한 삶의 기록일 때 가능하다. 때로 개인의 기록이 역사의 기록이 되기도 하는데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나는 그렇게 분류한다. 소설가 위화가 아니라 격동하는 중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지켜본 개인 위화가 들려주는 중국 이야기 정도라고 하면 맞을까. 어린 소년부터 청년을 지나 치과의사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가 가식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중국.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이 현재의 중국을 만들었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인민, 영수(領水),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山寨), 홀유(忽悠), 10 개의 키워드를 통해 위화가 살아온 시대를 들려준다. 도저히 경험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즐거움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위화를 통해 중국의 정치를 마주하면서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점(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비판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다니), 현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체제(국가에서 직업을 지정해주었다는 사실)로 사람들을 통제했다는 점에 소름이 돋으면서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중국의 역사와 발전이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어느 순간 과연 이 글이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민주화 운동 텐안문 사건를 소재로 한 「인민」은 자연스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린다.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의 열정, 그들이 바랐던 자유, 수많은 인민의 희생과 거대한 역사의 기둥으로 존재하는 인민의 모습을 말이다. 「영수」는 예상했듯 마오쩌둥에 대한 기억이다. 그를 추억하면서 마오쩌둥 이후 중국 정치를 향한 열망은 다시 그 시대를 언급하게 된다니 뭔가 아이러니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기에 독자로써 「독서」와「글쓰기」에 대한 부분은 특히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친구들과 한 권의 소설을 필사하며 함께 읽었다는 부분은 과연 그게 가능한가 싶다가도 그 열정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로 결론을 맺었다. 글쓰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대자보 쓰기부터 작가가 되기까지 수많은 원고를 투고한 이야기. 그 시작이 좋을 글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소망이 아니라 치과의사(단순 발치사)에서 벗어나 좀 더 편안한 직장생활로 이어지기를 바랐다는 단순한 이유라서 살짝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위화의 글쓰기 철학은 진솔한 여운으로 남는다.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엇을 쓸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글쓰기」, 137쪽)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의 인생의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도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의 길이다. 이 두 가지 길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같아서 하나가 강대해지면 다른 하나가 필연적으로 쇠약해진다. 내 현실에서의 삶의 길이 갈수록 평범해지는 것은 허구에서의 내 삶이 갈수록 풍부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쓰기」, 147쪽)

 

 위화의 말대로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면 타인의 인생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말은 최고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루쉰」과「혁명」은 앞서 들려준 「인민」과「영수」에서 확장된 듯한 글이다. 그러니 반드시 차례대로 읽지 않다도 괜찮다. 마음에 끌리는 단어를 먼저 읽어도 끊어지지 않고 맥은 이어진다. 나머지 「차이」,「풀뿌리」,「산채」,「홀유」는 현재의 중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은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바꾸어버렸다. 우리는 멀리뛰기 경기라도 하듯 물질이 극단적으로 결핍된 시대에서 낭비가 넘치는 시대로, 정치 지상의 시대에서 금전 제일의 시대로, 본능이 억압된 시대에서 욕망이 넘쳐나는 시대로 건너뛰었다. 이 30년이란 세월이 몸을 한 번 웅크렸다가 도약하는 시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차이」, 194쪽)

 

 우리는 현실과 역사의 거대한 차이 속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커다란 꿈의 차이 속에서 살고 있다. (「차이」, 216쪽)

 

 놀랍도록 빠른 성장의 이면, 갈수록 커지는 빈부 격차, 진짜와 똑같이 모방을 하는 능력으로 가짜가 주류가 된 세상,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국 사회의 고발, 그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똑바로 보고 오늘을 살아야 한다고 위화는 말한다. 분명한 건 이 책은 위화 한 사람, 개인의 목소리로 전하는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사회의 거울이자 자화상이 된다. 그가 쓴 것은 삶이기 때문이다. 위화 개인의 삶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중국의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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