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친하게 지내는 언니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한 시간 후에 온다는 것이다. 나는 언니에게 얼마의 시간이 허락되었는지 물었고 수목원에 가자고 제안했다. 작약이 피었을 것이고 나는 작약을 봐야 한다고. 커피와 빵을 먹으며 볼 일을 본 후 우리는 수목원으로 향했다. 수목원에 도착해서야 얼마 전 언니가 수목원에 다녀갔다는 걸 알았다. 작약을 좋아하는 내가 작약을 보고 싶어 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좋아하는 곳을 자주 찾는 걸 즐기는 나와는 달리 언니에게는 수목원을 찾을 이유가 없었을 텐데, 고마운 일이다.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많았다. 모자를 쓴 방문객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5월 중순의 수목원은 말 그대로 초록의 공간이었다. 제법 뜨거운 햇볕도 우리는 막을 수 없었다. 오로지 작약을 향한 전진, 작게 조성된 작약은 내게 기쁨을 안겨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내내 즐거웠다. 아지 피지 않은 작약은 봉오리도 예뻤다. 그곳의 풍경을, 그곳의 공기를 한 줌 가져오고 싶을 정도였다. 붉게 물든 얼굴과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 그 작약은 꽃잎을 떨구었을지도 모르겠다. 뜨거웠던 날들을 식혀주려고 꽃을 쉬게 하려고 비가 내리는지도 모르겠다. 작약을 떠올리면 유희경의 시집 『오늘 아침 단어』이 함께 온다.
네가 심었다던 작약이 밤을 타고 굼실거리며 피어
나, 그게 언제 피는 꽃인지도 모르면서 이제 여름이
라 생각하고, 네게 마당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그게 아니면, 화분에다 심었는지 그 화분이 어떻게
허연빛을 떨어뜨리는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네가 심
은 작약이 어둠을 끌고 와 발아래서 머리 쪽으로 다
시 코로 숨으며 번지며 입에서 피어나고, 둥근 것들
은 왜 그리 환한지 그게 아니면 지금은 어떻게 설명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봄은 이렇게 지
나고 다시 여름이구나 몸을 벽에 붙여보는 것이다 그
러니 작약이라니 나는 그게 어떻게 생긴 꽃인지도 모
르고 나도 아니고 너는 더구나 아닌 그 식물의 이름
이 둥그렇게 떠올라 나는 네가 심었다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고 또 그런 작약이 마냥 지겨운 건 무슨 까닭
인지 심고 두 손을 소리 내어 털었을 네가, 그 꽃이.
심었다던 작약이 징그럽게 피어
-「심었다던 작약」, 전문
장석남의 작약도 있다.
빈방에서 속눈썹 떨어진 걸 하나 줍다
또 그 언저리에선 일회용 콘택트렌즈 마른 걸 줍다
이 눈썹과 눈으로는 무엇을 보았을까
이 눈썹과 눈의 주인을 생각한다
눈물 위에 이걸 띄워서 무엇을 보았을까
작약싹 올라온다
작약꽃이 피어 세상을 보다가
떨어질 것을 생각한다
작약 겹겹 꽃잎 속에
이 눈의 주인과 내가
눈 꿈쩍꿈적하며 나눈 말을
숨겨두리라
작약,
숨겨두리라
-「작약」, 전문

작약을 보러 간 수목원은 언제나 그렇듯 평온한 생기가 넘쳤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새소리, 가장 매혹적인 향기,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나무들, 자세히 보게 만드는 잎사귀들, 우리가 그것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작약을 보고 온 후 『슈베르트와 나무』를 주문했다. 나무를 더 가까이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