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의 여왕 -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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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할 수 있는 죽음이 있을까? 피할 수 없더라도 미룰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남겨질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죽음은 천둥과 번개처럼 한순간에 날아든다. 스스로 선택한 죽음은 더욱 그러하다. 죽음을 말하는 찰나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흔히 죽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은 남겨진 자의 슬픔과 애도, 그리고 유품이라는 이름의 물건이 남는다. 그것들은 존재를 모르는 어디론가 보내지거나 소각된다. 한 줌의 재로 사라진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버지 지창씨와 유품정리사가 된 딸 해미의 이야기 이유의 『소각의 여왕』은 죽음과 소멸에 대해 말한다. 아니다, 죽음에 대한 애도이자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준다. 할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고물상은 한때 큰돈을 안겨줬지만 죽은 어머니의 병원비와 불경기로 지금은 내리막의 상태다. 재수를 하던 딸 해미는 학원 대신 지창씨의 고물상을 돕는다. 포터를 몰고 폐지와 각종 고물을 수거하며 살아간다. 버려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지창씨가 자신 몰래 이상한 출장을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름 아닌 유품 정리였던 것이다. 죽음의 흔적을 말끔하게 치우고 물건을 처분하는 일. 대부분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해 죽음을 선택한 경우였다. 그러니까 그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지창씨에게도 그런 선택이 있었다. 해미가 보기엔 사기가 분명했지만 지창씨는 동창 정우성이 추천한 휴대폰에서 이트륨을 분리하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 그러했다.

 

 되든 안 되든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분명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지창씨는 자신의 심장이 그렇게 힘차게 뛰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아침을 눈을 뜰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77쪽) 

 

 지창씨가 그 일에 전부를 걸었을 때 해미는 광고까지 하며 유품정리에 뛰어든다. 의뢰인의 사연을 알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개입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나 해미는 감정을 배제하고 거리낌 없이 죽음이 지나간 자리를 대면하며 죽음을 몰아낸다. 한때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물건과의 이별의식을 치르는 것이 고물상의 일이듯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공간과의 이별을 대신하는 것이 유품정리인지도 모른다. 유족을 대신해 죽음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206쪽)

 

 죽음을 만지며 삶을 이어가는 해미를 통해 이유는 삶과 죽음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는 걸 알려준다. 죽음의 그림자를 완전히 소각하는 순간 또 다른 삶이 거기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죽음과 삶 둘 중 어느 쪽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 묻는다. 설사 소각하지 못한 채 여전히 죽음과 함께 머물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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