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김엄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거울을 통해야만 나를 볼 수 있다.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고 믿기도 한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여야만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판단한다. 어쩌면 소설 속 인물도 그러하다. 그들을 가장 잘 아는 이는 작가여야 하는데 작가는 독자에게 그것을 넘겨 버린다. 독자라는 거울을 통해 보려는 것이다. 김엄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괜찮은 상태가 아니다. 직장을 잃었거나 미로처럼 출구를 찾지 못한 반복된 일상을 살거나 내밀한 관계를 지닌 상대를 잃은 지 오래다.

 

 고깃집에 취직하여 사장이 추천한 고기를 먹는 일을 하기로 한 삼겹살 마니아 우라라 (「돼지우리」), 아버지와 이복동생과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고 세 개의 손가락을 잃어지만 혼자 살아남은 나(「기도와 식도」), 아내가 키우는 개 영철이보다 쓸모가 없는 실직한 남편 영철이(「영철이」), 잃은 직장을 잃고 갚아야 할 빚이 있지만 바다를 보면 괜찮을 거라 믿는 남자(「그의 사정」), 우연한 동창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나(「어느 겨울날」), 계곡이 있는 산을 찾아 떠난 곳에서 계속을 찾지 못하고 맴돌며 사소한 일상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직장 동료와 매일 상사를 욕하면서 회식에 참여하고 휴가를 생각하는 E.(「고산자로12길」)

 

 9편의 이야기 속 인물은 소유보다는 무소유의 상태로 삶을 지속한다.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 괜찮게 살아간다. 아니 변화하려고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하여 누군가는 소설에서라도 좀 신나는 세상을 만나면 안 되냐고 화를 낸다. 그러나 놀라운 건 무기력한 사람들의 일상을 반복해서 묘사하는 김엄지의 탁월한 능력이다. 인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한 장면만 내세워 보여주는 기법은 불편함과 동시에 궁금증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왜? 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오히려 무의미한 일상을 그리는 문장은 경쾌하고 편안하다. 그것은 오래된 습관처럼 굳어진 누군가의 일상이 우리의 일상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괜찮았다. 그는 자신의 과체중을 생각해 하루 두 시간씩 걸을 정도로 괜찮았다. 그는 하루 종일 누워 있을 만큼 괜찮았다. 그는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을 때마다 괜찮다고 대답할 정도로 괜찮았다. 그는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할 만큼 괜찮았다.’ (그의 사정, 112쪽)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의 외로움은 어디에도 닿아 있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무엇과 반대되는 성향의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런 상태였을 것이다.’ (어느 겨울날, 146쪽)

 

 청춘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그들의 자화상을 그린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저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나를 견디는 일만으로도 힘겨워 제대로 거울을 마주하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 말이다. 김엄지는 독자들이 그들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무슨 존재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의미 있는 일상이 아닌 무의미한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자책하거나 비관하지 말고 그저 살아가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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