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저마다 사느라고 분주하여 타인의 안타까운 사연이나 비밀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을 뿐이다. 겨우 직장에서 얼굴 보는 이들과 형식적인 안부를 나누며 살아간다. 그러니 사건 사고는 물론이고 평범한 일상 뒤에 숨겨진 놀라운 진실에도 무감각해진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야경』속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순간과 맞닥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표제작 「야경(夜警)」은 작은 파출소의 경찰이 사건을 진압하다 죽음이 맞이하는 이야기다. 공식적으로는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출동한 곳에서 벌어진 사고였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파출소장인 나는 신입을 맞이할 때마다 경찰로 적합한 사람인가 판단을 내린다. 사고로 죽은 히로시는 경찰이 되지 말아야 했다. 아내를 위협하는 칼을 든 남편에게 총을 발사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총을 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이 된 히로시는 총을 쏴야만 했다. 혼자서 파출소를 지키다 유혹을 참지 못하고 발포했기 때문이다. 실수를 감쪽같이 덮으려면 남편에게 나머지 총알을 쓰면 완벽한 성공이었다.

 

 “그 녀석은 총을 좋아했습니다. 총을 쏘고 싶어서 해외여행을 다녀와서는 얼마나 빨리 쐈는지 자랑만 늘어놓는 녀석이었습니다. 총을 휴대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된 게 아닐까요? 그러니 인질을 지키려고 발포했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제 동생이 그렇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할 리 없어요.” 「야경(夜警」, 49쪽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총기를 분실하고 잡았던 범인을 놓치고 심지어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뇌물을 받는 경찰을 기사를 통해 접하는 게 현실이니까. 때문에 「야경(夜警)」은 단순 재미를 위한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잘못된 욕망으로 인해 한순간 삶이 점멸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 같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그것을 통제할 수 없는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힘든 직장 생활에 지쳐 사라진 연인을 만나기 위해 도착한 온천 여관에서 자살을 예고하는 유서를 발견하고 죽음을 막으려 노력하는 「사인숙(死人宿)」은 묘하다 못해 음울하다. 자살로 유명해진 여관이라는 설정이 독특하다.「만등(萬燈」은 일본이 아닌 방글라데시를 배경으로 천연자원 개발을 위해 파견된 이타미가 죄의식 없이 살인에 가담하는 이야기다. 한 번쯤은 들어왔을 한적한 시골의 휴게소에서 벌어지는 교통사고의 진실에 다가가는「문지기」, 과거에 신세를 진 하숙집 여주인이 저지른 이해할 수 없는 살인을 변호하는 「만원(滿願」. 모두 죽음을 다룬다.

 

 아버지를 놓고 뛰어난 외모를 지닌 엄마를 상대로 벌이는 자매의 기이한 애정을 다룬 「석류」는 예외라 할 수 있다.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기괴한 설정과 함께 아름답게 성장하는 동생에게 아버지를 빼길까 경계하여 상처를 내는 언니의 마음(아름다워지기 전에 상처를. 나보다 아름다워질지 모를 등에, 비록 자그마하더라도, 평생 남을 상처를.’)를 납득할 수 있을까? 정말 섬뜩하고 충격적이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 끝을 상상할 수가 없다.

 

 『야경』은 다양한 죽음을 정면에 내세웠지만 결국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 일상 곳곳에 놓여 있는 죽음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