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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죽어가고 있는 지금, 하늘이 더 크게 보인다. 아니면 내가 더 작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28쪽)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산다. 어김없이 내일을 꿈꾼다.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어설픈 공감이란 단어로 내뱉어서도 안 된다. 다만 생각하고 다짐한다. 절실하지 않은 삶은 어디에도 없다고.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데이지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싶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기록하며 하루하루를 알차고 소중하게 사는 데이지에게 암은 지워야 할 목록 가운데 하나였다. 사랑하는 남편 잭과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항암 치료와 방사능 치료도 다시 인생의 목록에 존재할 거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고 승리했다. 분명 그러했다. 그런데 암이 재발했다. 단순 재발이 아닌 시한부 삶을 통보하고 있다. 데이지의 몸은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어떤 통증도 증상도 찾을 수 없기에 데이지는 믿고 싶지 않다. 논문을 쓰고 잭이 졸업을 하면 더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데 죽음이라니.
누구라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데이지는 달랐다. 낡은 집을 수리할 계획을 세우고 강의를 듣고 치료를 위한 진료도 놓치지 않는다. 확인되지 않은 임상치료에 참여하며 여느 때와 똑같은 일상을 이어간다. 눈물로 인사를 전할 엄마에게도 담담히 알리고 자신의 상황을 떠벌리지 않고 가장 소중한 친구 케일리에게만 전한다. 그렇게 죽음과 함께 살아가다 자신의 죽음을 깨닫는다. 딸이 사라진다는 것을, 친구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하는 남편 잭의 아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문득, 그러나 또렷이,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두려움이 잭에게 일어날 일임을 깨닫는다.’ (135쪽)
시시각각 다른 크기와 형태로 다가오는 죽음의 절망이 아닌 혼자 남겨질 잭이 안타까워 데이지는 견딜 수 없다. 자신이 없으면 엉망인 일상을 이어갈 잭. 무엇 하나 찾지 제대로 찾지 못하고 필요한 것들을 잊어버리고 공부밖에 모르는 잭. 과연 잭의 졸업식에 참여할 수 있을까? 데이지는 잭의 곁을 지킬 아내를 찾아주기로 한다. 분명 미친 짓이다. 잭과 함께 남겨진 시간을 쪼개어 살아도 부족한데 아내를 찾다니. 이런 일을 응원할 사람은 케일리뿐이다. 잭에게 어울릴 사람을 찾기 위해 사이트에 가입하고 공원이나 카페에서 여자들을 관찰한다. 잭이 좋아할 스타일인지, 말이 통할 만한 사람인지 살펴보다 쏟아지는 어떤 감정과 마주한다.
그랬다. 데이지는 여전히 간절하게 잭을 사랑한다. 약 때문에 오렌지색 우스꽝스러운 피부가 되고 암세포가 자신의 영혼까지 지배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잭과 처음 만난 그 순간의 떨림처럼 그를 원하고 그를 사랑한다. 잭에게 완벽한 아내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아무에게도 내주고 싶지 않은 잭의 사랑을 원했다.
‘잭이 나를, 진짜 나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예쁜 나를, 강하고 능력 있는 나를, 그가 사랑에 빠졌던 나를.’ (359쪽)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걸 주려고 애쓰고 누군가는 사랑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강요한다. 데이지와 잭이 사랑하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 서로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오해를 쌓아가는 둘에게 필요한 것 역시 사랑이다. 데이지의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잭이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내 옆 바닥에는 하얀 운동 양말이 열 켤레는 쌓여 있다. 치우기를 잊어서가 아니다. 너무 게을러서도 아니다. 그게 우리들만이 이해하는 장난이기 때문에 거기 둔다. 내가 끊어낼 수 없는 데이지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 그리고 데이지가 어디에 있든, 웃고 있기를 바란다.’ (412쪽)
영원한 이별 때문에 오늘의 사랑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곁에 있는 사랑을 만지고 느끼고 기억해야 한다.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기 두렵고 무섭지만 그것을 함께 계획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랑도 필요한 것이다. 사랑을 믿지 않고 결혼을 포기하는 시대에 사랑의 의미를 말하는 소설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만으로 삶의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슬픔을 이길 수 있는 사랑, 절망을 버릴 수 있게 만드는 사랑의 존재를 보여준다. 데이지와 잭의 사랑이 그러하다.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사는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