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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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닿은 곳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세상은 특별한 것에 주목한다. 말을 바꾸자면 개성을 존중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세상의 기울기는 독특한 것보다 예쁘다는 쪽에 기운다. 그러니 선천적으로 얼굴에 거대한 흉터를 지닌 여자가 세상을 향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분명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움츠리게 된다.

 

 주인공 선화는 오른쪽 얼굴을 덮은 짙은 흉터로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서른다섯 살의 여자다. 꽃집을 운영하면서 꽃을 잡고, 꽃을 만지고, 꽃과 함께 살아간다. 선화의 상처를 알지 모르는 누군가는 꽃과 보내는 일상을 아름다움의 결정체라 여기며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선화는 단 한 번도 꽃처럼 환한 미소를 보인 적이 없다.

 

 존재만으로도 가족에게 짐이었던 선화였다. 할머니는 선화뿐 아니라 엄마에게도 험한 말을 내뱉었다. 언니 연화는 흉터 때문에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선화를 증오했다. 결국 선화가 연화의 얼굴에 엄마의 화침을 던지면서 엄마의 사랑은 거둬진다. 더이상 엄마의 꽃집은 선화에게 안식처가 아니었다. 

 

 ‘오른손으로 얼굴을 칠 때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제발 이 자리에서 사라지게 해달라고 빌었다. 짝, 짝, 짝, 짝, 소리가 반복될수록 짝, 짝, 짝, 짝, 감각은 무뎌지고 짝, 짝,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멀리 언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느샌가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흔드는 것 같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절망스러웠다.’(45쪽)

 

 자신의 흉터에는 눈길조차 닿지 않았지만 언니의 상처를 매만지는 가족들, 선화는 세상의 모든 불운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처럼 두려웠을 것이다. 거기다 두 딸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서른다섯 살의 엄마를 이해할 수도 없다. 그래도 선화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휴학을 반복하며 대학을 졸업했고 이력서를 냈지만 선화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세상은 나 같은 존재 자체를 아예 인식하지 못했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 쳐다볼 이유조차 없는 존재, 신경쓸 겨를도 없는데다, 필요도 없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한낱 먼지와 같은 것이었다.’(95~96쪽)

 

 아무도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을 향한 절망과 분노는 선화의 감정을 앗아갔다. 사랑, 연애, 결혼은 선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이 아닌 꽃을 향해 열렸다. 옛 연인에게 꽃을 보내는 영흠, 농장에서 나무를 키우는 병준을 통해 선화는 다시 세상을 보려 한다. 어쩌면 선화에게 꽃은 선화가 되고 싶었던 유일한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특정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꽃은 특별한 의미니까.

 

 김이설의 소설 <선화>는 우리에게 수많은 선화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한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닌 누구도 보려 하지 않았던 흉터 뒤에 가려진 깊고 상처를 말이다. 또한 선화 스스로가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과 먼저 대면하게 만든다. 꽃보다 아름다운 얼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한 선화라는 이름의 꽃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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