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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평점 :
꿈에서도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보았다. 과거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를 아는 지인과 떨림을 공유하고 말았다. 혼자만 간직하기엔 버거운 비밀이라서, 가시처럼 아픈 사람이기에. 아니, 잠시라도 그에게 닿았다는 충만함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이별이 그러하다. 저마다 다른 이름의 가시를 품고 살아간다. 뽑아내야 할 가시라는 걸 알면서도 가시와 함께 살아간다. 가시를 숨긴 채 말이다.
‘가시는 살아 있는 선인장의 데드마스크라 할 수 있다.’ 31쪽
그러니까 이 소설은 가시를 품은 생의 풍경들이다.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데스마스크를 통해 시작된 세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 비밀이라는 이름 아래 숨기기엔 너무도 벅찬 사랑이라 메아리로 돌아올지라도 토해내야 할 골짜기가 필요했다. 소설의 화자인 ㄱ에게 그것은 대학 시절 만났던 선생님이다. 편지처럼, 일기처럼 고백하는...
‘비밀이 없는 삶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지루하기 이를 데 없이 느껴져요. 사람들이 제일 숨기기 어려운 비밀은 기침과 사랑의 불꽃일 거라고 봐요. 누구든 기침을 하고 누구든 사랑의 불꽃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아침에 옷을 입고 세상으로 나가면서 사람들은 터져 나오는 생의 기침과 찰나적이면서도 영속적인 사랑의 불꽃을 행여 누구에게 들킬세라 횡경막 아래 은밀하게 숨겨요. 효율성 중심으로 짜인 세상의 법칙과 그것은 도무지 맞지 않으니까요.’ 196~197쪽
이혼 후 고향인 ‘소소’로 돌아온 ㄱ은 혼자 생활한다. 자유롭게 혹은 고독하게 생을 즐긴다. ㄱ 앞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남자 ㄴ이 등장한다. ㄴ을 통해 죽음을 본 건 ㄱ의 내밀한 곳에 죽음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ㄴ에게 방을 내주면서 ㄱ의 삶은 생동감이 넘친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더플백 하나만 소유한 ㄴ은 ㄱ의 집에서 우물을 판다. 마치 자신의 관을 향해 나아가듯. 그럼에도 ㄱ과 ㄴ은 죽음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말이다.
둘 사이를 더욱 활기차게 만든 촉매제 같은 ㄷ이 온다. 갓 소녀에서 벗어난 어린 여자. ㄱ이란 언니와 ㄴ이란 아저씨가 생겨 마냥 기쁜 ㄷ. 둘 사이를 끊고자 하는 게 아니라 둘 사이를 이어 더 긴 끈을 만들기를 소망한다. 한 남자 ㄴ과 두 여자 ㄱ, ㄷ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사랑이었고 생에 대한 욕망이다. 설명할 수 없는 관계, 설사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받을 수 없는 관계다. 스스로 꼭지점이 되어 삼각형을 만들고자 했던 몸부림이라고 하면 맞을까.
ㄱ, ㄴ, ㄷ의 이야기를 차례로 저마다 어떤 가시를 키우며 살아왔는지 들려준다. 가족을 잃고 온전한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와 결혼했지만 언제나 목마른 사막처럼 살았던 ㄱ, 불행을 몰고 다니는 듯 자신의 존재를 경멸하며 부랑자로 살며 노래를 품었던 ㄴ, 죽음을 동경하지만 죽음이 아닌 생을 선택한 ㄷ은 자신의 가시를 통해 서로의 가시를 상쇄시킬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셋으로 삼각형을 이룬 게 아니었어요. 셋으로부터 확장되어 우리가 마침내 하나의 원을 이루었다고 나는 생각해요. 역동적이고 다정한 강강술래 같은 거요. 둘이선 절대로 원형을 만들 수 없잖아요. 셋이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원형이지요.’ 209쪽
기묘한 이야기다. 소설 속 표현대로 셋은 ‘덩어리’가 되어 사랑을 나눈다. 덩어리는 셋이 아닌 하나가 되었을 때 가장 행복하다. 하나가 된 셋의 풍경은 곧 사라진다. 우물이 완성되고 그 우물에 ㄴ이 빠져 죽었기 때문이다. ㄷ이 곁에 있었지만 ㄴ스스로 우물 속으로 향했는지 알 수 없다. 자신만의 세계에서 부르지 못 했던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말이다. 우물은 메워졌고 ㄷ은 사라졌다. ㄱ도 집을 떠난다. ㄴ의 데스마스크가 발견되고 ㄱ은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ㄴ에게 대해 알게 된다. 그가 지닌 슬픔의 크기를, 가시가 박힌 깊이를, 그가 꿈꿨던 노래를...
셋은 분명 서로를 사랑했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다. 그러나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게 바로 사랑이라는 감정이고 우리네 생이다. 박범신은 소설을 통해 그것을 보여준다.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 생이 존재하며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의 일부라는 걸 말할 뿐이다. 어쩌면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가시를 품은 나와 당신의 풍경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