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끝에 다시 -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함정임 외 지음 / 바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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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구란 그런 곳이다. 가는 사람은 멀리 가고 오는 사람은 먼 곳에서 온다. 그날도 아마 서울 경기 지역에서 굳은 결심으로 가출하여 내려온 이들이 있었을 테고 그들처럼 친구도 올라간 거였다. 커다란 하천을 통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육지의 물과, 수평을 흐르는 해류의 바닷물, 그리고 철썩이는 파도가 만나서 뒤섞이는 곳이 항구인데 그런 탓에 이곳에서의 삶이란 수직과 수평의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여수 친구」173~174쪽)

 

 가끔 D 도시를 생각한다. 적확하게 말하자면 그곳에서의 나를 그리워한다. 꿈과 사랑이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을 만든 곳이다. 아니다, 꿈은 이루지 못했고 이별의 상처가 남아 나를 패배자로 만든 도시다. 그럼에도 그곳을 떠올리면 명랑해진다. 내 기억에 남은 모습은 실재의 그곳과 다르지만 말이다.

 

  『그 길 끝에 다시』속 소설에도 D 도시를 만날 수 없었다. 7명의 작가가 선택한 도시는 가깝고도 멀었다. 속초, 원주를 제외한, 부산, 정읍, 여수, 제주도, 춘천은 낯설지 않았다. 각각의 도시를 담은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곳에 동행한 이들이 떠올랐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이도 있다. 문득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왜 이렇게 멀어졌을까, 생각한다. 생이라는 직업에 최선을 다하느라 그랬을까. 안부를 전하는 일도 의무로 전락해버렸다. 

 

 뒤늦게 전 남편의 부고를 전해 듣고 결혼식을 했던 속초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백영옥의 「결혼기념일」, 파킨슨 병에 걸린 아내가 기억하는 정읍댁이 아기 때 폐렴으로 잃은 첫 딸이라는 걸 알게 되는 손홍규의 「정읍에서 울다」, 원주를 떠나지 못하는 동갑내기 친구들의 소소하면서 특별한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 낸 이기호의 「말과 말 사이」,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벌어진 잔인한 살인사건을 들려주는 윤고은의 「오두막」, 정착과 부유의 삶에 교차하는 여수의 풍경을 담은 한창훈의 「여수 친구」, 관광지라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쓸쓸한 도시의 뒷모습을 몽환적으로 표현한 함정임의 「꿈꾸는 소녀」, 여행자가 발견한 춘천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김미월의 「만 보 걷기」속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잠시 머문 도시에서 맺은 인연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에 쉼이라는 여유가 존재하지 않아서다.

 

 고백하자면 이런 종류의 테마소설집을 좋아한다. 그에 반해 그에 대한 느낌을 전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렵다는 말이다. 백영옥과 손홍규의 소설은 사랑, 결혼, 이별, 죽음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고 이제는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한 제주에 대해 숨겨진 진실을 밝히듯 범죄를 다룬 윤고은의 소설은 신선했다. 풍경화를 묘사하듯 담담한 한창훈과 김미월의 소설은 마치 작가의 이야기는 아닐까 착각을 불러온다.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건 수록된 작가 인터뷰였다. 어떤 작가는 소설의 내용과 이어지는 공적인 느낌의 인터뷰였고, 어떤 작가는 작가 개인의 사적인 인터뷰였다. 자신을 잃어가는 아내를 통해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보여주는 「정읍에서 울다」의 작가 손홍규가 물음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그렇다.

 

 ‘단어가 그렇듯이 문장부호도 하나의 발화거든요. 단어는 마음에 안 들면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단어를 찾을 수 있지만 문장부호는 그런 호환이 어렵잖아요. 특히 이 소설에서는 물음표로 담을 수 없는 어감을 살리기 위해 고심했어요. 부부의 대화는 대부분 묻는 말과 대답하는 말로 이루어졌지만 묻는 말에는 물음 너머의 의미가 담겨야 하고 대답하는 말에도 대답 너머의 의미가 담겨야 해요. 물음표를 사용하면 삭제했을 때 마땅히 물음표가 있어야 할 자리였기 때문에 반쯤을 물음의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또한 물음표가 없기 때문에 물음 너머를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지요.’ (작가 인터뷰 중에서, 221쪽)

 

 애착과 증오를 갖는 건 다르지 않다. 미련이란 공통점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작가들이 선택한 도시의 풍경은 어떤 이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아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현지인과 이방인의 차이는 없다. 어디서든 각자의 삶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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