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흩날리는 밤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김미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잔인한 4월이다. 눈이 닿는 곳마다 꽃비가 내린다. 그러나 눈부신 풍경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없는 날들이다. 이런 책을 통해 잠시 잔인한 봄을 외면한다. 벚꽃 흩날리는 밤이란 매혹적인 제목의 책은 맥주바 ‘가나리야’ 를 운영하는 마스터 구도를 중심으로 단골손님들의 사연을 들려주는 연작 소설집이다. ‘가나리야’ 는 퇴근 후 맥주 한 잔과 맛있는 안주를 곁들여 수다로 지친 하루의 피곤을 푸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니까 다섯 편의 소설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우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발이 닿는 범위 내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안도감을 안겨 준다. 혹은 맥주와 술안주, 그 밖에 여러 가지 요소가 정신을 맑아지게 하는 장소. 그곳이 바로  ‘가나리야’ 다.’ (15주년, 13쪽>

 

 표제작 <벚꽃 흩날리는 밤>은 형사인 간자키가 죽은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편지를 읽고  ‘가나리야’ 을 찾은 이야기다. 아내가 그곳에 간자키를 위한 마지막 선물을 부탁해 두었다는 것이다. 간자키는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그곳의 분위기를 살피며 구도가 권하는 음식을 먹는다. 분홍빛 녹차밥을 먹으며 아내가 해주었던 녹색의 녹차밥을 생각한다. 그러다 연두색 꽃이 피는 벚나무의 이름이 교이코라는 것을 떠올린다. 5년 전에 간자키가 담당한 사건 피의자와 관계된 인물이었던 유리에를 감시했던 사연을 구도에게 이야기한다. 교이코가 필 무렵 한 공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그녀에게 연정을 품은 것이다.

 

 교이코는 왕벚나무가 다 지고 나서 꽃을 피우는 품종이었고, 꽃잎이 연두색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무엇보다 다른 벚나무의 꽃이 모두 떨어지고 나면 공원 안이 아주 훤해진다. 쇼부 호수의 건너편에서도 나무 아래 서성이는 유리에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터였다.’ (벚꽃 흩날리는 밤, 81쪽)

 

 간자키는 그 뒤에도 봄마다 교이코 꽃이 필 때 그 공원에서 연두색 원피스를 입은 유리에를 지켜봤다고 고백한다. 어느 해 그녀가 종적을 감출 때가지 말이다. 아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가나리야’ 까지 와서 녹차밥을 먹게 만들었을까. 작가 ‘기타모리 고’는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묘사로 죽은 아내와 사라진 유리에게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 미스터리다.

 

 섬뜩하거니 기괴한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택시 기사를 하는 히우라가 고향 단골 요릿집의 15주년 행사 초대장을 받는<15주년>도 마찬가지다. 파티에서 히우라는 요릿집 딸인 유미에게 15년 전 고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의 범인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부탁을 받는다. 그건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딸 유미를 지켜줄 사람으로 히우라를 시험한 것이다. 그 외의 단편도 마찬가지다.  ‘가나리야’ 에 들러 구도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걱정을 털어놓을 뿐이다.

 

 특별한 점은 맥주바  ‘가나리야’ 의 마스터 구도의 역할이다. 정성을 담은 음식으로 지친 영혼을 달래주면서 묵묵히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을 분석하고 해결한다. 마치 그곳에 오면 모든 걸 구도에게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면 맞을까. 이 단편집이 감성을 자극하는 건 음식 때문이기도 하다. 단편마다 등장하는 음식은 마치 묘약처럼 느껴진다.

 

 입안에 넣자마자 춘권의 외피가 생두부 껍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용물은 송이버섯만이 아니었다. 가늘게 썬 갯장어와 잘게 썬 파드득나물이 섞여 있다. 그리고 일반 당면 대신 칡당면을 사용했다. 옆에 곁들여진 기포 모양의 음식에는 가쓰오부시와 다시마의 진한 맛이 배어 있었다. 입에 넣자마자 음식은 사르르 녹아들면서 환상적인 맛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그네의 진실, 164쪽)

 

 피곤한 일상과 걱정을 뒤로하고 편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치유의 공간, ‘가나리야’를 상상한다. 꽃이 진 자리 남겨진 슬픔의 봄을 찬연한 소설이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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