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빛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5
이누이 루카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남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의 존재를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나에게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신비로운 끌림이라 설명하고 싶은 이누이 루카의 단편집 『여름 빛』을 읽으면서 내내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내게 속한 어떤 특별한 감각 같은 것 말이다.

 

 책에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는 무섭기보다는 아련했다. 누군가와 이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사다 지로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이 떠올랐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처연하다. 1부와 2부로 나누어 · · 귀와 이 · · 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신체 부위와 감각에 대한 사연인 것이다. 

 

 표제작인 「여름 빛」은 표지를 통해 예상할 수 있는 눈에 대한 내용이다. 소설은 현재가 아닌 1945년 2차 세계대전 말 큰어머니 댁인 세토우치 어촌으로 피난 온 소년 데쓰히코와 다카시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다카시는 학교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다. 얼굴 왼쪽 전반에 시커먼 반점이 있는데 다카시의 엄마가 임신 중 배가 고파 상괭이를 먹어서 생긴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마을에선 상괭이는 신령과 같은 존재라서 다카시에게 저주가 내린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였을까, 놀랍게도 다카시에겐 죽음을 보는 능력이 있었다. 누군가 곧 죽을 사람을 보면 다카시의 왼쪽 눈동자의 푸른빛이 반짝이는 것이다. 그러나 데쓰히코에겐 상관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 다카시는 저주받은 괴물처럼 보였지만 데쓰히코에게는 언제나 함께 하고 싶은 친구였다.

 

 ‘다카시의 작고 둥근 밤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하나, 둘 헤엄친다. 더 집중해서 응시하자 암흑 속에서 광점이 순식간에 증식했다.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되지 않는 신기한 푸른빛이 줄지어 움직인다.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여름 빛」, 54~55쪽)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공습경보가 끊이지 않는 날들, 가족과 떨어진 소년의 외로움은 오직 다카시를 통해서만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딧불 처럼 반짝이는 눈을 통해 죽음을 예감하는 능력이라니, 어린 소년에게는 참으로 가혹하다. 이누이 루카는 이처럼 소외당한 사람들의 슬픔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들은 모두 다카시처럼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요양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교수가 소개한 집에서 지내는 「쏙독새의 아침」의 주인공 이시쿠로는 마스크를 쓴 기묘한 소녀를 본다. 마스크를 벗은 소녀의 입술은 새의 부리와 수염이 있었다. 이시쿠로에게만 보이는 모습이었다. 뿐만 아니라, 「백 개의 꽃」에서 기미는 자신보다 예쁜 동생 마치를 두고 저주의 주술을 외운다. 모두가 동생에게만 관심을 보여 속상한 것이다. 형제나 자매가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졌던 마음이라 기미가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2부에서는 기르던 금붕어가 돌연변이 괴물 금붕어가 되어 사람을 공격한다는 섬뜩하면서도 기발한 이야기 「이」, 마술사 아빠에게 학대를 받는 소년 다쿠의 하늘을 나는 능력 「Out of This World」, 감정을 냄새로 맡을 수 있는 아야코의 사연 「바람, 레몬, 겨울의 끝」에서도 이누이 루카는 공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누군가의 감정이 풍기는 냄새를 맡는 후각을 지닌 「바람, 레몬, 겨울의 끝」은 정말 매혹적인 이야기다. 주인공 아야코는 폭군인 아버지와 함께 동남아에서 인신매매로 팔려온 소녀들을 감시하는 일을 맡는다. 언제 죽음이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 소녀들에게는 슬픔과 죽음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소녀 츠마는 희망을 나타내는 녹차 향기가 감돌았다. 온갖 핍박과 절망 속에서도 츠마는 바다를 보러 간다는 아빠의 말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츠마를 통해 아야코 역시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살을 에는 바람. 이어서 아직 푸르른 빛을 머금은 상큼한 레몬. 그리고 겨울의 끝을 알리는 풀과 흙의 기척. 그런 다른 향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서로 쫓으며 줄짓다가 뒤섞였다. 꼭 음악 같았다. 초등학생 시절 음악실에서 들은 파헬벨의 캐논을 떠올렸다. 한 가지 선율이 또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겹치고, 깊이를 더해 더욱 퍼진다 ― 츠마가 내뿜는 건 환상적으로 피어오르는 향의 캐논이었다.’ (「바람, 레몬, 겨울의 끝」, 317~318쪽)

 무척 기묘하고 독특한 소설이다. 강렬했던 첫인상은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끝을 맺는다. 문득 지금도 어딘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기적이라 불릴 수 있는 일들,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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