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좋아한다. 복숭아의 계절은 아직 멀리 있고, 딸기의 계절이다. 나는 딸기도 좋아한다. 한데 최근에 딸기를 먹은 적이 없다. 방울 토마토와 시든 귤만 먹었다. 식탁 위엔 딸기 사진이 걸려 있다. 친구의 선물이다. 친구는 내가 딸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냥 우연의 일치였다. 존 버거의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엔 죽은 이들이 기억하는 과일들(Some Fruit as Remembered by the Dead) 이란 부분이 있다. 책엔 몇 가지 과일이 등장한다.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와 자두에 대해서도 나온다.

 

 

 복숭아

 

 우리가 먹었던 복숭아는 햇볕에 검게 변했다. 엄밀히 말하면 시뻘건 검은색이지만, 붉은 기운보다는 검은색이 더 짙었다. 시뻘겋게 달궜다가 꺼내 식히는 중이어서 여전히 뜨겁다는 경계심을 갖기 어려운 쇠의 검은색. 말편자 같은 복숭아.

 검은색이 전체적으로 퍼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 그들이 졌던 부분은 희끔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늘을 드리웠던 나뭇잎들이 제 색을 슬쩍슬쩍 칠한 것처럼 녹색이 살짝 감돌았다.

 우리 때에는 유럽의 부잣집 여자들이 얼굴과 몸을 복숭아처럼 희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집시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복숭아는 한 손에 꽉 차게 큰 것에서부터 당구공만큼 작은 것까지 크기가 상당히 다양했다. 작은 것의 껍질은 더 섬세하기 때문에 살이 짓무르거나 너무 익을 경우 보일 듯 말 듯 주름이 잡히는 경향이 있었다.

 그 주름을 보면 검게 그을린 팔뚝에서 접히는 중간 부분의 따뜻한 피부가 연상되곤 했다.

 속에는 씨가 있는데 질감은 짙은 나무껍질 같고, 모양새는 제멋대로인 게 꼭 운석 같다.

 이런 야생의 복숭아는 신이 도둑들을 위해 만든 과일이었다. (108, 109쪽)

 

 

 ‘죽은 이들이 기억하는 과일들이라는 제목인데 나는 죽은 이들을 기억하는, 으로 읽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노란 참외를 좋아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삶은 당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할머니는 그랬다. 꽃을 좋아했고, 악세사리를 좋아했고, 예쁜 걸 좋아했고, 조금은 질척한 밥을 좋아했고, 누룽지를 좋아했고... 하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나는 엄마가 좋아했던 과일을 떠올릴 수 없고, 엄마가 좋아했던 그 무언가도 떠올리지 못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차이였을까.

 

 누군가의 과일을 생각한다. 작은 언니가 좋아하는 귤, 오빠가 좋아하는 배, 큰 언니가 잘 먹는 토마토, 과일이라면 모두 좋다는 친구 H. 어쩌면 그 모든 게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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