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강 -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87
김선희 지음 / 사계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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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느끼는 맛에는 매운맛만 있는 게 아니다. 쓴맛도 있고 신맛도 있고 떫은 맛, 단맛, 짠맛도 있다.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맛들도 있다. 시큼털털한 맛이라든가, 달콤짭짜름한 맛, 매콤씁쓰레한 맛. 삶은 여러 가지 맛의 변형이다.’ 205~206쪽

 

 비교적 수월하게 사춘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딸이었다. 괜히 툴툴대고 차려 놓은 밥도 일부러 먹지 않고 그냥 학교에 갔다. 집보다는 학교가 더 좋았고, 칭찬이 인색한 엄마보다는 선생님이 더 편했다. 그 시절을 지금을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성과 외모에 관심이며 갑자기 변화하는 몸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아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다스리기도 버거운 상태인데 집안 상황까지 나쁘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삐뚤어 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주인공 열여덟 살 동이는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동이는 사고로 일곱 살 아이로 변해버린 아버지를 생계를 위해 닭집을 운영하는 엄마와 취업 준비로 항상 화가 나 있는 형을 대신해 돌봐야 한다. 사고 전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가 아닌 자신을 작은 형이라 부르며 사고를 치는 동생 같은 아버지를 씻기고 먹이는 일은 동이의 몫이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착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청소년 소설과 다르게 심각한 학교 폭력나 왕따, 입시 위주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스트레스를 야동을 보는 것으로 해결하는 성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의 소년 동이와 무서운 집착에 가깝게 매운 맛을 좋아하는 소녀 미령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동이는 친구 희우를 통해 미령이 운영하게 카페 ‘더 빨강’에 가입한다. 매운 걸 잘 먹지도 못하면서 미령과 친해지고 싶어 정모에 나간다. 아이들은 모두 매운 음식을 신나게 먹는다. 하지만 동이는 그런 분위기가 낯설기만 하다.

 

 “매운 걸 좋아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을 거야. 어떤 사람은 그냥 좋아서 먹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욕구 불만일 때 먹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삶이 재미없고 시시하게 느껴질 때 매운 걸 먹고 정신이 번쩍 들 수도 있고.” 43쪽

 

 동이와 미령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이는 아버지를 돌보고 치킨 배달을 하는 육체적인 고통과 집 재건축 보상금을 주식 투자로 날리고 빚을 남기고 사라진 형 때문에 걱정하는 엄마를 지켜봐야만 했다. 미령은 어린 시절 유괴 당했던 상처 때문에 힘들었다. 미령이 만든 매운 맛 카페가 자살 카페라는 소문이 돌며 자살 여행을 계획한다는 걸 듣고 동이는 미령에게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낸다. 동이는 달라진 아버지를 통해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어떻게든 미령을 말리고 싶었던 동이는 여행에 합류한다. 여수에 도착한 미령과 친구들은 각자 준비해 온 재료로 매운 음식을 요리하고 먹을 준비를 한다. 긴장한 동이는 먹지 말라고 살아야 한다고 소리친다. 미령은 단순하게 매운 맛 대결을 위한 여행이라는 걸 확인시킨 후 동이에게 유괴 이야기를 한다. 유괴 후 자신을 향한 시선 때문에 외로웠던 시간과 매운 걸 좋아하게 된 이유를 말한다.

 

 “어느 날 멋모르고 매운 고추를 먹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확 당기는 거야. 지루하게 걷고 있는데 누가 발을 거는 느낌? 그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어. 그냥 걷는 건 재미없잖아. 누가 발도 걸어주고 뺨도 때려 주고, 그래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지. 또 살아야겠다는 전투력도 생기고. 너희는 나하고 다른 이유로 매운 걸 먹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아 있기 위해서 매운 걸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잖아.” 191~192쪽

 

 미령은 통증처럼 밀려오는 매운 맛을 통해 살아 있다는 걸 느꼈던 거다. 저마다의 이유로 매운 걸 좋아하지만 살아 있기 위해서 매운 걸 먹는 건 같았다. 그래,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평생 일곱 살로 사는 아버지, 갚아야 할 빚으로 고생해야 할 엄마,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형이지만 가족이고 살아 있으니 괜찮다.

 

 사는 동안, 동이가 맛보게 될 맛은 무한할 것이다. 그 맛을 다 맛보는 게 삶일 것이다. 빨강으로 기억될 열여덟을 지나 다양한 색으로 마주할 수많은 동이와 미령의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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