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을 좋아한다. 고독과 몽환으로 이끄는 글이 좋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은어낚시통신』이 아니라 『남쪽 계단을 보라』로 처음 만났다. 때문에 소중하고 특별한 책이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왔다. 아, 저 표지를 어쩌란 말인가. 절로 단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을 떠올리게 만든다.(물론, 내용은 묻지 말기를). 내가 기억하기론, 그의 소설엔 절기가 등장하고, 바다와 산이 자주 등장한다. 그 바다, 그 숲을 다시 만나고 싶다.
책은 책을 불러온다. 정녕 그러하다. 신해욱의 시집 『생물성』의 시「자루」의 속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란 싯구는 염승숙의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로 이어진다. 이 소설의 제목은 분명 신해욱의 시에서 온 게 아닐까. 소설을 직접 만나지 않고서야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신해욱의 『생물성』으로 인해 『간결한 배치』도 궁금해졌다.
책은 책으로 이어진다는 자명한 사실, 나만 몰랐던 걸까?
그는 폐가 없는 듯이 숨을 쉰다.
나는 내용물이 가득한 자루를 끌어안고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있다.
*
"자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는 나를
숨 쉬는 가구들이 들어찬 방으로 밀어 넣고 있다.
배설물이 가득한 꿈을 강요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무럭무럭 자라는 베개 속에서
내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지도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
나는 간신히 자루를 붙잡고 있다.
자루 속에
숨을 수는 없다.
일을 해야 한다. (「자루」,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