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뒤인지라 삶과 죽음, 다시 말하면 격렬한 죽음을 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투우장뿐이었고, 나는 그것을 잘 살필 수 있는 스페인에 몹시 가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는 법을 배우려고 하였고, 그것을 가장 단순한 사물로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그리고 모든 사물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가장 기본적인 것의 하나인 격렬한 죽음이다. 거기에는 병사라든가, 흔히 말하는 자연사라든가, 또는 친구나 그 밖에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의 죽음에서와 같은 복잡성은 없지만, 그럼에도 죽음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죽음은 사람이 쓸 소재의 하나가 될 수 있다. 11쪽

 

 

 어제 도착한 책 상자에서 꺼낸 헤밍웨이의 오후의 죽음』의 일부다. 일부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한 장을 넘겼을 뿐이고 계속 이어 읽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계속해서 책을 사고 있다. 내 방은 엉망진창이다. 어떤 형태로든 탈이 날 것이다. 시집은 시집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쌓아두고,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많지도 않은 책이 방치된 것이다.

 

 그런데도 책을 주문하려고 생각 중이다. 강성은의 시집 단지 조금은 이상한을 말이다. 아직 알라딘 책 소개에는 목차차를 비롯한 시집에 대한 정보가 없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표제작 <단지 조금은 이상한> 시를 옮긴다.

 

 

 아직 이름이 없고 증상도 없는

 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멈춰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생동하는 세계와 같은

 

 단지 조금 이상한 병처럼

 단지 조금 이상한 잠처럼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계절처럼

 슬픔도 없이 사라지는

 

 위에서 아래로 읽는 시절을 지나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읽는 시절을 지나

 이제는 어느 쪽으로 읽어도 무관해진

 노학자의 안경알처럼

 

 일요일의 낮잠처럼

 단지 조금 고요한 

 단지 조금 이상한

 

 

 

 

 

 

 

 

 

 

 

 

 

 

 

 

 

 

 

 노란 참외를 먹고, 다홍색의 방울 토마토를 먹고, 김언수의 소설집 을 읽다가 설터의 단편집 『어젯밤』을 뒤적이다가, 간질거리는 목이 신경 쓰여서 잠들기 전 약을 먹어야 할까, 고민하는 밤이다. 월요일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친구에게 내일은 문자를 보내야 겠다는 생각, 굵은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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