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이맘때, 수국에 빠져 있었다. 수국을 보러 가려고 계획을 세우고 수국을 간절히 바랐다. 여름을 앓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올해도 수국을 향한 마음은 같다. 하지만 계획은 없다. 그러니까, 아마도 올 해는 수국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수국의 날들을 대신하며 이런 시를 찾았다.  릴케의 가장 아름다운 시를 엮은 이 시집 『소유하지 않는 사랑』을 구매한 건 몇 년 전. 읽기로 작정한 건 아니다. 그저 생각날 때마다 펼치게 될 것이다. 수국이라는 말에 반가워서 옮긴다.

 

 

 분홍빛 수국

 

 누가 이런 분홍빛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산형꽃차례의

 이 꽃송이 들 속에 이런 분홍빛이 모여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금을 입힌 물건들의 금 빛깔이 벗겨지듯이 이 꽃송이들은

 많이 써서 그런 것처럼 서서히 붉은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들은 그런 분홍빛을 위해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분홍빛은 이들을 위해 지상에 남아서 허공에서 미소짓는가?

 천사들이 있어서 분홍빛이 사라질 때면, 이 분홍빛을

 다정하게 받아주는가, 마치 향기처럼 관대하게?

 

 아니면 이들은 분홍빛을 포기하는 건지도 모른다,

 분홍빛이 꽃의 시듦에 대해 절대 알지 못하도록,

 하지만 이 분홍빛 아래서 푸른빛은 다 엿들었다,

 푸른빛은 이제 시들어가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 147~148쪽>

 

 

 청수국

 

 팔레트에 마지막 남은 초록빛 같다,

 이 이파리들은, 마르고 투박하고 거칠다,

 파란빛을 스스로 띠지 않고 그저 멀리서

 반사시키는 산형(繖形) 꽃차례들 뒤편에서.

 

 그것들은 울어 지친 듯 파란빛을 대충 반사한다,

 파란빛을 일부러 다시 잃어버리려는 것 같다,

 그리고 오래된 파란 편지지들처럼 그것들 속에는

 노랑, 보라색 그리고 잿빛이 깃들여 있다 ;

 

 어린아이의 앞치마에 어리는 것 같은 퇴색한 빛깔,

 더 이상 해질 게 없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

 우리는 한 작은 생의 짧음을 어떻게 느끼는가.

 

 하지만 산형 꽃차례들 중 하나에서 갑자기

 파란빛이 새로워지는 것 같다, 초록 앞에서

 감동적인 파란빛이 즐거워하는 게 보인다.

 

-<소유하지 않는 사랑, 101~102쪽>

 

 

 

 시집을 둘러보다 이런 시집을 발견했다. 홍일표 시인의 『매혹의 지도』다. 고백하자면, 표지에 끌려 클릭했다가 수국과 마주한다.  ‘수국에 이르다라는 시다. 수국을 노래한 시인이 고맙다. 알라딘에 올라온 시의 전문은 이렇다. 시인은 달지 않은 수국이라 말한다. 하지만 시에서, 수국에서, 단 맛이 난다.

 

 

 솜사탕을 수국 한 송이로 번안하는 일에 골몰한다//솜사탕은 누군가 내려놓고 간 벤치 위의 따듯한 공기/헐떡이다가 그대로 멈춘//수국은 수국을 통과하며 말한다//하늘에서 엎질러진 구름이 완성한 노래가/나무젓가락에 매달려 반짝이는 동안/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햇살들이 손수건만 한 경전을 펼쳐들기도 한다//땅속에서 캐낸 태양은 먹기 좋게 식어 있다/붉은 껍질만 잘 벗겨내면/달지 않은 수국 한 송이 꺼내/한 열흘 땅 위의 배고픈 그림자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멀리서 온 바람이 수국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지나간다
―「수국에 이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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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2 1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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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24 06: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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