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에게나 삶은 고달프다. 저마다의 이유로 흔들리고 고통스럽다. 그럴 때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바로 어머니일 것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니 그런 어머니가 들려주는 귀한 말을 시로 만날 수 있는 이정록의 『어머니 학교』는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시집인지 모른다. 마주하는 시마다 정겹고 친근하다. 촌부로 살아오면서 자연에서 얻은 귀한 지혜가 가득하다. 자식의 아픈 몸과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

 

 그믐달 - 어머니 학교 18

 

 가로등 밑 들깨는

 올해도 쭉정이란다.

 쉴 틈이 없었던 거지.

 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

 지나고 봐라. 사람도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음 없었던 보름달 없지.

 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

 어떤 세상이 맨날

 보름달만 있겄냐?

 몸만 성하면 쓴다. (38쪽)

 

 전망 - 어머니 학교 30

 

 새들이 이제 사람도

 팡개질도 무서워 안 해.

 둥지가 자꾸 낮아지더구나.

 먹을 게 지천인데 누가 새 잡겄냐?

 허수아비 대신 마네킹을 세놔도 허사여.

 밭두둑에 수건 벗어놨는데 까치가 쪼아대더구나.

 어미까치지 싶어 그냥 놔두고 왔다.

 낮은 층에 살면 밖에서 들여다본다고 싫어하던데

 사람은 사람에게 비춰보며 살아야 해.

 들여다보면 좀 어떠냐? 제 집에서 뭔 나쁜 짓을 그리 많이

한다고.

 로열층이 어떻고 경치가 어떻고 으스대지만

 전망도 한두 번이면 텔레비젼만도 못한 거여.

 사람만큼 좋은 전망이 어디 있겄냐?

 새는 눈이 없어서 낮은 곳에 둥지를 틀겄냐?

 진짜 전망은 둥지에서 내다보는 게 아니고

 있는 힘 다해, 날개 쳐 올라가서 보는 거여. (58쪽)

 

 속상한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우리를 옴싹달싹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미 그 세월을 견딘 어머니는 다 알고 있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아직 젊다고 믿기에 깨닫지 못하는 진리, 인생 고개마다 얻는 교훈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는 자명한 이치를 말이다.

 

 살과 뼈 - 어머니 학교 35

 

 연살

 바지게살

 창호지문살

 암만 생각해도

 살과 뼈가 바뀐 것 같지 않냐?

 왜, 연뼈

 바지게뼈

 문뼈라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아녀.

 문살은 문풍지가 목뼈고

 바지게살은 지게다리가 정강이뼈고

 연살은 바람구멍이 등뼈인 겨.

 

 왜냐면, 살은 타는 거고

 뼈는 우는 것이거든.

 그런데, 뼈와 살이

 한꺼번에 울고 탈 때가 있어야.

 그건 새끼가 아플 때여.

 할머니는 생짜로 셋이나 앞세웠으니

 뼈고 살이고 캄캄하게 눈이 멀어서

 대낮에 차에 치인 겨.

 살을 끌어다 숨통을 끊으신 거여.

 당신의 뼈로 당신의 고통을. (66~67쪽)

 

 눈물 비누 - 어머니 학교 47

 

 비누나 비눗갑마냥

 쉬이 더러워지는 게 삶이여.

 처음부터 때가 껴 있던 게 아니라

 골골 때가 탄 거지, 미움이나 원망이란 것도

 무언가 다가와 몸 부리고 간 흔적 아니겄냐.

 내가 끌어들인 거품이 가슴속 어둔 골짜기에

 둥지를 튼 거지, 다음 몸이 들어와 살 부빌 것 생각해서

 사금파리나 날카로운 게 빠져나간 자리여.

 그 마음 골짜기 다스리는 데는 눈물만 한 비누가 없어야.

 모든 강물의 원천은 눈물샘이여.

 남몰래 넘치는 눈물 한 방울. (81쪽)

 

 뼈가 울 정도의 고통이라니, 감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부모가 되어서도 자식만 보살필 뿐, 내 부모의 사랑을 헤아릴 줄 모르는 우리는 언제나 철이 들까. 쉬이 더러워지는 게 삶이라고 말해주는 어머니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수록된 72편의 시를 읽으면서 많이 웃고 많이 아팠다. 시와 함께 수록된 시인의 어머니 사진을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어머니의 생각과 모습을 시로 녹아낸 시인이 몹시 부러웠다.

 

 하루살이 - 어머니 학교 72

 

 막내가 가르쳐준 건데

 하루살이는 애벌레 때부터

 스무 번도 넘게 허물을 벗는다더라.

 그러니께 우리가 보는 하루살이는

 마지막 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거지.

 수의엔 주머니가 없다는데

 알주머니 하나를 온전하게 채우고

 비우려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거여.

 필사적이란 말이 이렇듯 장한 거다.

 어미 아비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춤사위여. (128쪽)

 

 어머니의 넓고 포근한 품처럼 따뜻한 시집이다. 꿈에서도 만날 수 없는 어머니를 만난 듯하다. 힘들고 지칠 때 이 시집을 펼친다면 어머니의 손을 잡은 듯 기운이 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