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바웃
김하경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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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오늘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이 말은 어떤 이는 과거에 매달린 채 살고, 어떤 이는 오로지 내일만 보고 산다는 것이다. 모두 행복한 삶을 원하지만 그들의 방식은 다르다. 김하경의 소설집 『워커바웃』은 당신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사냐고 묻는 듯하다. 소설 속 인물은 우리와 다르지 않게 이 시대를 사는 시민들이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고,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고 혼자만 끙끙앓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하고,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어 분노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 누군가의 일기처럼 다가온다.

 

 표제작 <워커바웃>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고 사는 한홍이와 그녀의 마음을 열게 만드어 준 발데르를 통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리랜서인 홍이는 친구 희선의 부탁으로 율포조선 해고자들의 농성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율포로 향한다. 25년 전 아버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굴뚝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와 그들을 지지하고 걱정하는 그들의 가족과 동료를 통해 그녀는 과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 때문에 가족 모두가 힘들었기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율포에서 노동자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삶을 마주하고 나서야 그들이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을 응원하며 자신의 취재를 도와주는 발데르에게서 어떤 희망을 보게 된 것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와 있는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들과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말하게 되었다는 것을. 같은 마음으로, 같은 언어로 말하게 되었다는 것. 비로소 굴뚝 위 사람들과 굴뚝 아래 사람들이 내 안에 들어와 하나가 되었다.’ 198쪽

 

 이 소설을 읽으면서 김진숙과 크레인을 떠올린다. 함께 염려하고 함께 기도했던 순간들을 말이다.  아버지의 삶에 속하고 싶지 않았던 홍이가 굴뚝 집회 현장을 지켜보면서 발데르에게서 느꼈던 그것은 같이 가는 것이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다 함께 가는 길이 더 아름답고 더 행복한 일라는 걸 우리는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초란>은 과거 노동 운동의 지도자였던 강준을 통해 여전히 노동 운동의 현실은 아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라고 말한다. 시골로 들어와 닭을 키우는 강준은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다. 과거 대산중공업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함께 노동 운동을 하던 친구 영호가 감옥에서 죽은 것이다. 그 뒤로 강준은 그 일과 관련된 이들과는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러다 늦었지만 영호의 추모비를 세우는 행사로 후배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강준을 통해 1980년대를 마주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안타까운 건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선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자는 강준의 말은 이 시대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든든한 힘이 된다.

 

 ‘1980년대처럼 싸우라는 말이 아이다. 그렇게 싸울 수도 없꼬. 지금은 분명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아무리 세상이 절망적이라 캐도, 노동조합은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데이. 그 유일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촛불 시민이 아무리 거리로 몰려나와도, 인터넷 누리꾼이 아무리 떠들어싸도, 조직적으로 되지 않으모 반짝하고 끝나고 마는 기라. 눈을 뭉칠라카모 먼저 작은 덩어리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가? 그 작은 덩어리를 굴리모 많은 눈들이 거 들러붙어 큰 덩어리가 되는 기라. 그 작은 덩어리 하나하나가 노동조합 아이가?’  69~70쪽

 

 촛불 시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동참을 유도하는 <지르 자자! 찌찌!>, 교통사고로 뇌사자가 된 친구의 죽음을 통해 안타까운 의료 현실을 고발하는 <누가 죽었어요?>, 개혁을 꿈꿨지만 당에 이용만 당하고 빚만 지고 만 씁쓸한 정치 현장을 보여주는 <비밀과 거짓말>, 사회적 약자지만 보호받지 못한 채 결국 불행으로 생을 마감하는 둘례와 윤철의 이야기 <둘례전>은 모두 우리 사회의 문제를 보여준다. 

 

 김하경은 힘겨운 현실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인물을 내세웠지만 포기를 말하는 대신 앞으로 나가가라고 말한다. 강준의 말처럼 인생에는 연습도 실험도 없으니까.  희망을 버리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라고 말이다.

 

 ‘어차피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실험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실전이 있을 뿐이다. 분명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멈출 수도 없다. 그래서 간다. 빌어먹을……. 그게 내 운명이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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