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온전하다고 말하는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온전하다고 믿을 뿐이다.16년 전에 돌아가신 엄마를 기억하는 일이 쉽지 않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어느 날의 기억은 내 의지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미지에 불구할지도 모른다. 남은 사진 속의 젊은 한 여자의 수줍은 미소만 선명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하는 이라 해도 그를 기억하고 글로 쓴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쓴 『남자의 자리』와 어머니에 대한 글인 『한 여자 』를 쓴 아니 에르노가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이다. 아니, 고맙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잠시라도 내 어머니와 내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이것은 쉽지 않은 시도이다. 내게 어머니는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는 늘 거기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는 첫 행위는 시간의 관념에서 벗어난 이미지들 속에 어머니를 고정시키는 것 ― <어머니는 난폭했다>, <어머니는 전부를 다 불사른 여자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뒤죽박죽 떠올리는 것.’ p. 18~19

 

 그랬다. 그녀의 어머니처럼 세상 모든 어머니는 늘 거기 있는 존재였다. 여자가 아닌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으로, 자식을 키우고 가족을 돌보며 일을 하는 모습으로 있었다. 그 이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번도 엄마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내 어머니로 존재하는 삶이라 여겼던 것이다.

 

 한 여자로 태어나 성장하여 공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첫 딸을 잃고 전쟁 중에 다시 딸을 낳고 키운 여자. 식료품점을 운영하면서 딸과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기를 바라지만 사춘기를 접어든 딸은 점점 반항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어머니와 경계를 짓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상처이고 깊은 상실을 안겨주는지 그 시절의 모든 딸은 알지 못한다.

 

 ‘그녀의 가장 깊은 욕망은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 전부를 내게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녀에게는 과중한 노동, 극심한 돈 걱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p. 51

 

 어머니는 딸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좋은 것을 보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죽고 혼자 남은 어머니가 모든 짐을 들고 딸과 함께 살기로 한다. 능력껏 일하는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나 내어주려 한다. 그게 육아이든 살림이든 상관없다. 뭔가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싶었던 것이다. 치매라는 병이 그녀를 잠식할 때까지 모든 걸 주고자 했다. 어머니는 그런 존재였던가?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것 아니었을까.

 

 아니 에르노는 어머니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치매에 걸려 자신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모습까지 차분하게 담아낸다. 점점 무너지고 부서지는 어머니의 정신과 행동을,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절대로 놓지 않으려 했던 기억까지, 모든 걸 기억하고 그 공간에 함께 머물고 싶었다.

 

 ‘나는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먹이고, 만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p. 105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 버렸다.’ p. 110

 

 나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녀만을 위해 밥을 짓고, 그녀만을 위한 방을 만들고, 그 방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중으로 미뤘던 소소한 것들을 함께 할 그녀는 없다.  내 어머니의 목소리가 기억이 나지 않아 서글프다. 그저 내가 그녀를 닮았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