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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의 잭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고된 범죄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은 그 어떤 공포감 보다 크다.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기 마련이고, 사건의 키를 쥐고 있는 이가 범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공공장소 내용물이 확인되지 않은 물건이 발견되었을 때 경찰은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운다. 설령 누군가의 장난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폭발물을 숨겼다는 협박 편지를 받는다면 얼마나 두려울까. 그 장소가 하얀 눈 아래라면, 눈이 녹기까지 그 실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은의 잭』은 이처럼 사방이 눈으로 둘러싸인 스키장을 배경으로 폭탄을 설치한 범인과 그를 쫓는 이의 이야기다. 예년보다 많은 눈으로 스키장을 찾는 사람들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범인은 스키장측이 운영을 포기하고 경찰에 신고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범인은 그 모든 걸 꿰뚫고 있는 듯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요구하는 돈을 자신들이 지정한 방법으로 배달하라고 메일을 보낸다. 스키장 관리 책임자인 쿠라타는 손님의 안정이 최우선이라 경찰의 도움을 받고자 하지만 경영진은 단호하게 비밀을 유지하라는 명을 내린다.
작년에 일어난 사망사고로 인한 피해를 떠올리며 스키장측은 더이상 안전사고에 대해 나쁜 소문이 퍼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거기다 범인이 요구한 돈은 많지 않았고 돈을 받으면 폭탄이 있는 장소를 알려준다고 한 것이다. 범인의 요구대로 스키를 타고 돈을 운반했지만 폭탄이 묻힌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숨을 곳이라곤 찾을 수 없는 스키장에서 범인은 언제 돈이 든 가방을 가져갔단 말인가.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 스키장을 찾은 모든 인물이 의심스럽다. 스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노부부, 사고로 엄마를 잃은 타쓰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아들과 다시 그곳을 찾은 요시유키, 그 사건으로 폐쇠된 스키장 구역으로 인해 모든 영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마을 사람들, 스노보드 대회 출전을 위해 몰래 연습을 하러 온 치아키와 그의 사촌 형제들과 사건을 덮으려는 스키장의 경영진, 심지어는 돈을 배달한 패트롤 직원인 네즈와 에루까지 모두가 그렇다.
범인은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내고 빠른 스키 속도를 자신하는 네즈는 치아키와 함께 몰래 범인의 흔적을 찾기로 한다. 하얗게 펼쳐진 설원에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숨막히는 레이스가 펼쳐진다. 과연, 범인은 누구이며, 폭탄은 정말 있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혹시 뭔가 놓친 게 아닐까 혼란스럽다. 다양한 인물의 등장은 범인에 대한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복선이었을까. 아니면, 범인의 편지처럼 기업의 이윤만을 중시해 환경을 파괴하여 결국엔 재앙을 몰고오는 인류를 향한 경고 메시지일까.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추리소설이다. 스키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인질로 삼았지만 결국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범인을 쫓는 과정에 빠져들었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은 건 사실이다. 많은 용의자 중에서 범인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긴박감이 떨어진다.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로운 면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