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에 매혹되다 - 한시에 담긴 옛 지식인들의 사유와 풍류
김풍기 지음 / 푸르메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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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시를 떠올리면 학창시절의 수업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과서에서 다룬 조선 시대의 ‘김종서’나, ‘남이’ 장군의 시처럼 그 시대에 가장 중시하던 충, 예, 의, 효를 주제로 한 시로 기억될 뿐이다.  거기다 한자로 쓰였으니 옛 시를 대하는 보편적인 생각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선조들이 삶을 사랑하고 어떻게 표현했는지 잘 모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표현하는 형식만 다를 뿐, 자연을 벗하고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 같을 것이다. 옛시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많이 접해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은 옛시가 어렵다는 편견을 버리는 게 중요하다. 한시를 다양한 주제로 분류하여 소개한 『옛시에 매혹되다』가 좋은 책이 아닐까 한다. 
 
 책은 중국 옛시부터 고려에 이어 조선 시대의 시를 소개한다. ‘고전문학과 풍류’,  ‘부채 이야기’,  ‘차를 마시며’,  ‘절의 정신’,  ‘문학과 여행’,  ‘이별과 문학’,  ‘책과 사람’,  ‘봄노래’,  ‘꽃의 문화사’,  ‘질병과 몸’,  ‘변방의 노래’,  ‘장마의 계절’,  ‘비온 뒤의 산을 오르며’,  ‘정원 이야기’,  ‘대나무 향기 속에서’,  ‘은거의 즐거움’,  ‘밤비 내리는 소리’라는 17가지 주제를 정해 그에 맞는 옛시를 들려준다. 시대적 상황이나, 지은이에 대한 설명도 놓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느끼는 감정, 고향을 떠나 타향이나 타국에서 부모나 형제를 향한 그리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로 가슴 아픈 이야기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구구절절 장문의 글이 아닌 짧은 한시에 담긴 그 마음은 얼마나 애절할까. 

 어느 하나 사연 없는 시가 없겠지만  ‘이별과 문학’이란 주제에 ‘박지원’이 아버지를 닮은 형님을 잃은 슬픔을 나타낸 시가 특히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구와 비슷했나  
 선친 생각날 때마다 형님을 보았었지. 
 이제 형님 생각나면 어디서 뵈올까,  
 의관을 갖춰 입고 냇물에 비춰봐야겠지. (p. 107)

 다시는 볼 수 없는 형님에 대한 박지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부모에서 나고 자란 형제가 서로  닮은 건 당연한 일이나, 세상 떠난 부모와 형님을 내 모습에서 찾아야 하는 슬픔을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부모를 닮아가는 우리네 모습이다. 세월을 막을 수 없으니 죽음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그런가 하면 ‘밤비 내리는 소리’란 주제에 이런 시에도 마음이 스며든다. 

가을비 종일토록 내리니 
산 구름은 걷혔다 다시 덮힌다. 
오동나무엔 병든 잎 많아 
떨어져 사립문 감싸며 쌓인다. (p. 297)

 쓸쓸한 이 계절과 잘 어울리는 ‘이응희’의 시다. 여름 장맛비와 다르게 가을비는 스산하기만 하다. 곧 겨울이 다가옴을 말해주는 비라서 그런 것이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시인이나 지금 이 시를 읽는 내가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같지 않을까. 이처럼 저자는 일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다루어 한시에 대한 친근함을 유도한다. 어렵다는 생각만 접어도 한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쉬운 책이 아니다. 특별히 한시에 관심이 많거나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유용할 책이다. 그 외의 독자에겐 책에 수록된 한시를 통해 선조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고운 꽃을 마주할 때마다 ‘꽃의 문화사’, 누군가와 이별했을 때엔  ‘이별과 문학’, 비가 오는 날엔 ‘비온 뒤의 산을 오르며’ 부분을 펼쳐 읽는다면 한시와 더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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