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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삶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통해 때때로 함께 절망하며 분노하고 때떄로 함께 웃고 기뻐한다. 그리하여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소설은 그런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설렌다. 작년에 이어 『제 2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궁금했던 소설이다. 그러니까 1년을 기다린 거다. 기다림의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재개발로 철거 중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 김애란의 <물 속 고리앗>은 마치 이 때를 기다려온 것처럼 적절했다. 모두 떠나 버리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중인 어머니와 소년 단둘이 남았다. 철거 중인 아파트는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고립되었다.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들의 생사는 불투명하다. 세상은 물로 가득찼고 어머니 마저 죽었다. 혼자 남겨진 소년은 썩은 냄새와 더러운 오물을 헤치며 누군가를 만날 꺼란 희망을 안고 세상을 향해 나간다.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도 같은 맥락으로 읽었다. 미래 어느 날 지구는 종말의 시기에 이른다. 집들은 점점 땅 위로 솟아 오른다. 사람들과 엄마 아빠가 사라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건 오직 소년와 소녀 뿐이다. 그들도 곧 자신이 사라질 꺼라는 걸 알고 있다. 소년과 소녀의 삶은 불안과 초조함의 연속이다.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소년과 소녀는 성장한다는 걸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다투고 싸우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물 속 골리앗>과 <허공의 아이들>이 존재하는 누군가의 부재가 주는 고통을 그렸다면 이장욱의 <이반 맨슈코프의 춤추는 방>은 영혼의 외로움과 방황을 담았다 볼 수 있다. 러시아란 이국 땅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들은 액자식 소설처럼 펼쳐진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타인의 몸짓과 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감정을 소통할 수 없는 화자가 느끼는 고독은 내면에서 시작된 것이다.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화자에게 어느 날 모든 것이 뒤틀려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담은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인해 원하는 대로 육체를 소유할 수 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담은 김이환의 <너의 변신>은 독특하고 흥미로우나 섬뜩하다. 도덕과 윤리,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모습을 떠올린 탓인지도 모른다.
5편의 소설이 지닌 상처를 감싸주는 김유진의 <여름>과 정용준의 <떠떠떠, 떠>은 아름답다. 두 소설의 내용이 무조건 아름답다는 건 아니다. <여름>은 테이블을 만드는 남자와 인터뷰 내용을 글로 옮기는 여자의 일상이다. 남자가 만들어 내는 먼지를 참아내지 못하는 여자는 한 공간을 공유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담담하게 절제된 묘사는 서늘하다.
<떠떠떠, 떠>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가장 위대한 힘은 지닌 건 사랑이라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없는 남자와 때때로 발작을 일으키는 여자는 동물의 탈로 자신을 숨기며 살아간다. 놀이공원에서 사람이 아닌 동물 인형으로 일하는 그들은 서로의 모습 그대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사자와 팬더로 분한 그들의 삶을 누군가는 불행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그들에게 삶은 행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 사랑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김애란에 대한 믿음은 커졌고 작년에 이어 수상한 이장욱과 김성중의 소설은 휠씬 재미있었다. 권태로운 불편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김사과, 섬뜩하고 기이한 상상력으로 독자를 유인하는 김이환은 놀라웠다. 어디 그 뿐인가. 점점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김유진과 어떤 색을 가졌을지 궁금한 정용준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올 여름은 장마와 태풍이 함께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누군가의 집은 부서졌고 누군가의 삶은 무너졌고 누군가의 삶은 끝이 났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게 내가 아니라는 것에 우선 안도한다. 이처럼 삶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행과 불행 중 어느 쪽에 속할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모두가 행으로 가는 길이라 믿고 살아갈 뿐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줄 누군가의 존재를 믿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 역시 그런 존재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위는 조금씩 밝아졌다. 놀랍게도 비가 거의 멎은 듯했다. 이러다 다시 내릴지, 완전히 개려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마을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하늘에 뜬 노란 달을 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반달이었다. (...) 밖에 나오니 물속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추운 느낌이었다. 어쩌면 조금 있다 체조를 해야 될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기다려야 했다. 비에 젖에 축축해진 속눈썹을 깜빡이며 달무리 진 밤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그러곤 파랗게 질린 입술을 덜덜 떨며, 조그맣게 중얼댔다. “누군가 올 거야.”p. 46~47 - <물 속 골리앗>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