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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소설가에게 사물과 일상은 내가 알고 있는 의미와는 또다른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그 의미는 소설 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것이고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때로 놀라고 부러워하며 슬퍼하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 각자 다르듯 같은 소재나 주제를 다룬 소설이라도 소설가에 따라 다르다. 그런 소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삼십대의 여류 작가(김미월, 김숨, 김이설, 윤이형, 장은진, 한유주, 황정은)가 모여 비를 테마로 쓴 소설집『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은 더욱 그랬다. 비를 좋아하기에 더 좋았고 비라서 더 기대가 컸다.
누구나 비 오는 날이나, 비에 관한 그리움 하나 간직하기 마련이다. 비가 그런 것이다. 소설은 사전적 의미인 비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습한 기운이 가득하다. 비로 기억되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기 보다 소설 속에서 나는 비를 만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습하고 눅눅한 비가 아닌 새로운 비와의 만남이다.
김숨의 <대기자들>은 치과 치료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다. 주인공에겐 암투병중인 어머니가 있었고, 이혼 절차 중인 아내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의 풍경은 왠지 쓸쓸하도 처량하다. 대기자는 수동의 의미를 지녔다. 누군가가 자신을 호명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여전하게 대기하고 있지만, 확인시켜주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다. 그건 소설 속 비와 같다.
“비가 오네”?
대기자들 중 누군가 뜬금없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비는 아까부터 내리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비가 다 그친 뒤에 깨닫지 그랬나. 나는 짜증이 나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가 다 그친 뒤에나. 그러나 비가 그친 뒤에나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비는 내리는 동안에만 비일 것이었다. 그친 뒤에는 비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p. 66~67
지붕 위로 날라오는 티슈를 모으며 왜 티슈를 뿌릴까 호기심을 불러오는 장은진의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는 따뜻했고, 마법사와 비의 이야기인 윤이형의 <엘로>는 한 편의 아름다운 환상 동화를 만난 듯했다. 고교시절 백일장에서 남의 시를 훔쳐 적어 1등을 한 주인공의 비오는 날 시와 연상시킨 김미월의 <여름 팬터마임>은 가장 보편적인 비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김이설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은 부드러운 비가 아닌 폭력적인 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폭행으로 유린당한 상처를 지닌 화자인 ‘나’의 남편은 소아성애자다. 어린이 실내 놀이터 사장인 남편은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손을 댄다. 화자는 남편의 행동을 모른 척 한다. 사모님이라 불리는 호칭과 명품들과 과거를 보상받는 삶이라 여긴다. 아픔과 상처는 치유되었다고 치부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가 내릴 때마다 자신을 옭아매는 기억과 마주한다.
펑, 하는 소리와 곧이어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남편의 비명 소리도 섞였다. 나가보니, 바람과 빗물이 온 집 안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외벽 통 유리 한 짝이 바람에 박살 난 것이었다. 남편이 유리 파편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알몸이 유리에 긁혀 온통 붉은 자국이었다. 남편이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남편 눈에 박힌 주먹만 한 유리 조각이 보였다. 순간, 붉은 피가 솟구쳤다. 눈이 아니라 목이었다. 핏줄기가 뿜어졌다. 훅, 훅, 훅 - 심장박동을 따라 검붉은 줄기가 리듬을 탔다. 바람 때문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베란다가 피범벅이 됐다. 시뻘건 몸뚱이가 갓난아이처럼 보였다. p. 194
순간, 오래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김이설의 소설은 끔찍한 소재로 불편하고 잔인하나 묘한 쾌감이 있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결말을 소설을 통해 후련하게 해준다고 할까.
황정은의 <낙하하다>는 죽음을 비가 떨어지는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니, 죽어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녀의 소설은 하나의 문장이 기초하여 반복되고 확장되어 새로운 의미로 태어난다. 삼 년째 떨어지고 있는 화자는 비이며 죽음이다. 떨어지며 마주하는 풍경과 생각들이 함께 떨어진다. 바닥에 닿았을 때 그것들은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까. 우리가 마주하는 비가 비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 해 본 적이 있는가?
애초 빗방울이란 허공을 떨어져 내리고 있을 뿐이니 사람들이 빗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빗소리라기보다는 빗방울에 얻어맞는 물질의 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런 물질에도 닿지 못하는 빗방울이란 하염없이 떨어져 내릴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p.204~205
한유주의 소설 <멸종의 기원>은 인상적이었다. 화자인 ‘나’에게 할아버지는 ‘불행하라’는 유언과 ‘날씨표시상자’를 남겼다. 소설을 불행을 찾아 나서는 여행처럼 보인다.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엄마,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버지, 혼자 지내는 내 곁에 있는 건 날씨표시상사뿐이다. 건기에는 왕이 우기에는 여왕이 나타나는 상자였다. 그러나 언제나 왕뿐이었다. 화자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여왕은 등장하지 않았다. 왕은 마치 불행을 암시하는 듯 여겨진다. 그러다 날씨표시상에서 태엽을 발견한다. 왕과 여왕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유언은 정말 불행하라는 것이었을까. 묘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비가 내릴 때마다 듣는 음악이 있고 비가 내릴 때마다 읽는 시집이 있고, 비가 내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계절마다 비는 각기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라는 제목 때문이지 자꾸 단편에 어떤 색이 떠오른다. 무기력한 회색, 날 것 그대로의 선홍빛, 환상적인 노랑, 기분좋은 녹색, 빠져드는 보라, 명쾌한 파랑처럼 그들만의 색을 찾는 즐거움이 있다. 김미월과 한유주의 소설은 처음이라는 이유로 색다른 느낌이었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다면 그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어도 좋다. 끌리는 제목이 있다면 그 소설을 먼저 읽어도 역시 좋다. 일곱편의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당신의 비는 어떤 색으로 떠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