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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 02 - 김사과 소설집
김사과 지음 / 창비 / 2010년 12월
평점 :
기괴한 이미지의 표지는 소설에 대한 복선이라 해도 좋다. 그만큼 소설은 날카롭고, 기이하고, 섬뜩하다. 표제작인 영이를 포함한 8편의 단편은 욕설과 폭행과 분노가 낭자한 불편하고 불쾌한 소설들이다. 해서, 책을 잠시 멈추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소설은 독이 든 사과였다. 탐스럽게 윤기가 흐르는 사과를 한 입 베었을 때, 뱉어낼 수 없고 삼킬 수 밖에 없는 강한 향을 가진 그런 사과였다.
‘영이야. 아이들이 영이를 불렀다. 영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영이까지 합쳐서 다섯 명의 영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 방금 전까지 영이는 영이 하나뿐이었는데 아이들이 부르자 하나의 영이와 네 개의 영이들이 된 것이다. 영이는 몹시 당황했다. 하지만 영이가 네 개나 있으니까 괜찮다.’ p.8
영이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그녀를 주시하게 될 것이라고.궁금증을 불러오는 문장,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영이는 주인공의 이름이자, 상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신만의 영이가 있는 것이다. ‘영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영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주희의 영이가 새까만 뒤통수인 것처럼, 채은이의 영이가 이상한 머리핀인 것처럼, 은영이의 영이가 온통 미소인 것처럼 영이의 영이는 흉한 영이이고 모두 각각의 영이들일 뿐이다.’ p. 9~ 10
주인공 영이는 열 두살, 초등학교 5학년이다. 영이는 모두 같은 영이와 차별을 위해 자신의 영이를 순이라 부른다. 영이는 이제 순이인 것이다. 영이는 왜 순이를 만들어야 했을까. 영이의 가정 폭력을 목격하며 자랐다. 술에 취한 아빠, 그런 아빠에게 욕을 하는 엄마. 매일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두려움에 쌓인 영이는 방치되고 만다. 영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순이를 만들어야 했고, 순이는 그런 영이를 지켜야만 했다. 울고 있는 영이를 달래는 것도 순이였고, 욕을 하는 영이에게 학교 숙제를 기억하게 하는 것도 순이였다.
‘아빠가 술을 마신다 → 엄마가 욕을 한다 → 아빠가 엄마를 때린다 → 엄마와 아빠가 싸운다
아빠가 술을 마시면 엄마는 욕을 하고 아빠는 엄마를 때리고 둘은 싸운다. 한 문장으로 쓰면 될 것을 나는 왜 이렇게 많은 문장을 쓰고 있나. 왜냐하면 백 문장에는 백 문장의 진실이 있고 한 문장에는 한 문장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고통과 나의 고통이 다른 것처럼, 열 시간의 고통과 십분의 고통이 다른 것처럼, 백 문장의 진실과 한 문장의 진실이 다르다. 이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광경이기 때문에, 한 문장 - 삼초의 고통이 아니라 천 문장 - 삼천초의 고통을 안겨줘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도 느낄 수 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읽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아주 오래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당신은 아주 오래 느껴야 한다. 한 번 더 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말이다. 그래야 영이가 당신 마음속에 오래도록, 영이가 죽고 내가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p. 25
‘나는 읽는 당신을 원하지 않는다.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아주 오래 느끼는 당신을 원한다. 당신은 아주 오래 느껴야 한다. 한 번 더 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오랫동안 말이다.’ 영이가 느꼈을 공포와 분노가 담겨진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는 나는 과연 영이처럼 느낄 수 있을까.
<이나의 좁고 긴 방>는 우리가 꿈꾸는 이상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나가 다니는 학교는 장미색 대리석을 깔아놓은 휴게실이 있고 매정에는 최고급 베이커리의 빵이 있다. 그곳은 이상 세계였고 현실은 악취가 가득한 낡은 아파트에 살며 구두를 사기 위해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때워야 한다. 유명 시립대학교에 다니는 이나가 할머니를 살해한 건 우발적인 일이다. 할머니의 지갑에 있던 칠만 오천원 때문이 아니라, 죽음이 가까운 늙은 할머니를 도와준 것뿐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나는 죽은 할머니가 매일 찾아오는 환상이 없었다면 살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소설도 마찬가지다. 고추장에 중독된 재수생과 거식증에 걸린 여고생의 이야기인 <과학자>, 담임 선생님을 증오하며 개새끼 죽여버리겠다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10의 원조교재와 일탈을 일삼는 일상을 과감하지만 담담하게 그려낸 <준희>. 평범한 직장인이던 주인공이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어느 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 신기한 날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초등학생을 시작으로 여고생, 재수생, 20대 초반이다. 그들은 모두 스스로를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며 불안한 환경에 살고 있다. 결코 그들은 가정폭력, 가난, 방치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분노하고 절망한다. 김사과는 그들의 우울한 감정의 기복을 반복된 문장을 통해 부각시킨다. 영이에서 술에 취한 아빠에게 삽으로 내려치며 하는 말(개새끼가 정말로 개가 됐네, 개새끼가 정말로 개가 됐네 p. 32),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서 환상을 보고 마는 <정오의 산책>에서 주인공 ‘한’은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p. 177)란 말을 반복하며 자위한다.
소설엔 거울이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거울을 보고 있으나, 자신의 모습을 회피하고 싶다. 영이는 순이를 보고 싶고, 거식증에 걸린 여고생은 좀 더 마른 모습이 비춰지길 바란다. 그건 김사과의 소망인지 모른다. ‘거울이 도시를 비추고, 그 위로 빛이 내려앉는다. 쏟아져내리는 빛 속에서 다시 거울이 도시 전체를 반사한다. 이제 도시는 반사된 상에 불과하다. 거울이 놓여 있는 것은 하나의 흰 방이다. 방은 다른 방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창, 거울, 탁자, 미국식 아침식사로 구성되어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거기 비치는 것은 내가 아닌 어떤 거리다. 거울 속에서 나는 그 거리에 속해 있다. 여전히 시간은 오후 두시이고 같은 노래가 반복된다. 여전히 계절은 지옥이고 그 계절의 습기가 도시를 조금씩 미치게 만든다.’ p. 244
김사과의 소설에 등장하는 폭력과 혼상은 김이설의 단편<오늘처럼 고요히>,<순애보>를 떠올린다. 그러나 김이설과 김사과의 소설은 다르다. 김이설의 소설에서 분노와 폭력은 그 대상이 분명하나, 김사과의 폭력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서, 묻지마 살인과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살인이 등장하는 것이다.
신선한 충격이라고 하기엔 피가 넘쳐 흐르는 잔혹한 소설이다. 이제 20대 후반인 김사과가 바라보는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그려낼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