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중된 책읽기를 고치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 중에서도  소설만 읽으려니 말이다. 이번에는 산문이다. 2010년에 읽은 산문집을 살펴보니, 좋았던 책들이 많았다. 내 선택을 받은 5권은 이렇다.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른 책은 최윤필의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멋진 제목이 또 있을까. 부제는 또 어떤가.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좋다라는 한 마디면 충분하다. 아, 좋다.  

 ‘흔희들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만, 삶에서 맞닥뜨리는 세상은 새로운 여행지와 달리 대개는 외롭고 황량하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쳐갈 나그네나 구경꾼이 아니라, 불편한 시선을 무릎쓰고 어떻게든 비집고 껴 앉아야 하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세상은 그들이 마음 편히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넉넉한 세상, 지금보다는 휠씬 헐겁고 느슨한 세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p. 313

 박완서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편안한 글이었다. 우리네 엄마, 할머니의 삶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할까. 전쟁을 겪은 세대의 슬픔을 읽는 그런 시간들이다. 연평도 사태를 보면서 전쟁을 떠올리는 순간, 자꾸 이 책이 생각난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나는 누구인가? 잠 안 오는 밤, 문득 나를 남처럼 바라보며 물은 적이 있다.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영혼이다. 80을 코앞에 둔 늙은이이다. 그 두개 의 나를 합치니 스무 살에 성장을 멈춘 푸른 영혼이, 80년 된 고옥에 들어앉아 조용히 붕괴의 날만 기다리는 형국이 된다. 다만 그 붕괴가 조용하고 완벽하기만을 빌 뿐이다.’ p. 25~26  

『나는 가짜다』는 작가들의 초상화와 글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짧은 글은 작가 각각의 개성이 묻어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 처음 만난 작가, 궁금했던 작가들을 만나는 시간은 즐겁고 즐겁다. 거기다 그들이 직접 그린 그림까지 만나니, 괜찮은 기획이다. 

 ‘자화상이란 모름지기 이미 존재하는 육체적 외관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내면의 윤관 사시에 아슬아슬하게 맺히는,  하나의 긴장에 찬 이미지다. 모든 예술이 그럴 것이다. 외관과 내면 사이, 우연과 필연 사이, 자유와 부자유 사이, 필멸과 불멸 사이를 오락가락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p.163  권여선의 글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 서영은의 진솔한 삶의 여정을 들을 수 있는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산티아고 길에 관한 책이 맞다. 그러나 여행기가 아니다.  종교가 같다면 더 좋을 책이다. 내려놓을수록 버릴수록 영혼이 풍요로워지는 삶을 만난다.

  ‘인생의 중요한 결단이란 불시에 찾아들어 남모르게 치러지는 정신적 엑스터시와 같다. 그가 코앞에 있는 수건을 흔든다고 해서, 그 수건이 빨간색인가  하얀색인가 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는 없다. 입술을 꾸욱 다물고 시위를 당긴 방향, 화살이 날아가는 방향이 중요한 것이다. ’ p 18 

 김도언과의 첫 만남은 박범신의 책에서 그리고  앞서 소개한 나는 가짜다에서 짧은 글로 만났다. 그리고 그의 소설집을 샀다. 소설집보다 먼저 만난 산문집이 바로, 불안의 황홀 이 책을 사랑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같은 날의 내 일기(블로그의 메모나 리뷰)를 찾기도 했다.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읽어도 좋다.    

 11월은 소금 같다
 눈동자에 떨어지는 소금처럼,
 긴 황홀이다
 나뭇가지마다 흉터가 열리는,
 11월은
 비늘을 벗은 물고기처럼
 등이 따갑다 - 2005년 10월 30일 일요일 일기 전문   

 김도언이 소금같다고 말한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연평도 주민은 피난민이 되었고, 연말은 불안하게 다가온다. 모두에게 행복한 12월이 되면 좋겠다. 연평도 주민에게 의식주가 해결되면 좋겠고, 흥청망청 송년회가 아닌 조금은 경건하고 나눔이 있는 시간들이면 좋겠다. 12월은 설탕처럼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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